너무 친숙해서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이런 경우일 것이다. 서울에 대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를 잇는 성곽이 있고 그 옆으로 사람이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그것을 지금 것 알면서도 모르고 지냈다. 무엇이든 지금도 도전하시는 부모님의 소개와 동대문 옆을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게 된 옛날 담벼락들을 보며 아내와 오랜만에 의기투합하여 서울 성곽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계절의 여왕 5월의 가운데를 지날 때에 더 더워지기 전에 가자며 아이들을 과자로 설득하고 지하철을 타고 출발하였다.
오늘의 여정은 인터넷을 참고하여 가장 쉽다는 낙산구간으로 정했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왠지 오래되어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가 본다.
그렇게 골목이 끝나는 길에 나타는 서울 성곽길! 어떻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여태 모르고 살았을까 갑자기 부끄럽다.
아이들은 나의 감상을 전혀 모르고 힘들어 죽겠다고 난리다. 그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한걸음 씩 걸어가는데 아 정말 좋다. 그냥 이곳에 이 시간에 아내와 아이들과 걷는다는 것이 그냥 좋다.
걷다 보면 돌들의 모양이 여러 가지가 섞인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궁금증의 대답도 이미 길에 마련되어있었다.
이성계 때부터 순조 때까지 여러 번 성을 쌓았는데 그때마다 돌의 모양이 점점 커지고 각지게 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이 성을 쌓은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각자성석이라는 설명글을 보며 떠올랐다. 길가의 설명문 중에 돌에 지역의 이름을 써 놓은 돌과 설명을 볼 수가 있었는데 이 돌을 각자성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역 이름을 새기는 것은 고마워서나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성이 무너지면 그곳을 쌓은 사람들을 다시 불러다가 그 지역을 다시 쌓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들은 어디 가서 자신이 왔다 갔다는 것을 기념하려고 낙서를 하며 본인의 이름을 남기는데 조선시대였다면 그로 인해 괜한 고초를 겪게 되었을 테니 아무도 낙서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끝까지 걸으니 동대문이 나온다. 성곽 위의 세상과 너무나도 다른 그곳이다. 같은 서울 아래 불과 몇 미터 차이로 이렇게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신기하다.
여행의 즐거움은 먹거리였던가. 아내와 어디서 후회 없는 식사를 할까 고민하다 항상 현명한 결정을 하는 아내가 명동으로 가자고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명동교자로 가기로 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명동으로 향했다.
명동은 정말 또 다른 세상이다. 명동 교자처럼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는 곳이 많은 그곳에 바로 그 가게들과 골목의 구조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다 새것이라니.
한 십 년 만에 오는 것 같은데 맛도 여전한 것 같고 특히 마늘 맛 나는 김치가 참 반갑다.
아이들도 즐겁고 맛있게 먹은 뒤에 밖으로 나왔더니 흑화당이라는 요즘 유명한 찻집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일이냐 하고 얼른 줄 서서 딱 한 개만 사서 먹어보았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이런 것 같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을 만나는 즐거움. 오랜만에 가본 명동에서 예전의 기억을 다 떠올려보기도 전에 새롭고 신기한 경험을 하는 것.
흑화당의 맛은 우리 식구를 사로잡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명동 끝자락까지 왔던 우리는 다시 발길을 돌려 흑화당의 맨 뒷줄에 다시 줄을 서고야 말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울이라는 육백 년이 넘은 이 도읍지의 사대문 안의 모습을 그 역사에 비해 찰나인 오늘 하루 동안 잠시나마 느껴보며 가벼운 여행기를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