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태국 방콕으로 여행을 떠난다. 원래는 국내 마라도로의 짧은 독서여행을 계획하였으나 극성수기로 넘어가는 시점부터 국내여행 비용은 매우 높아지고 태국은 우기로 접어들어서 가격이 내려가다 보니 제주도와 태국이 비슷한 가격에 여행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태국 방콕으로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우리 식구의 태국 4번째 여행이다. 첫 번째는 전체 일정을 같이 하지 못하고 회사 일정으로 일부만 같이 했었고 두 번째는 아예 같이 하지를 못하였었다. 세 번째는 전 일정을 같이 하였으나 3박의 짧은 일정으로 거의 리조트에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태국에 대해서 너무나도 아는 것이 없는 여행을 하여왔다. 그래서 이번만은 어떻게든 태국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식구들에게 피력해 보았다.
이를 위해 아내의 도움으로 여행 일정을 짜 보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스마트폰에서 여행 일정까지 관리해주는 앱들이 나오다 보니 정말 새로운 세상이다. 이렇게 여행 일정 짜기가 쉽다니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래서 데이터를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현지 USIM 구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흐린 방콕 스완나폼 국제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를 마친 뒤에 바로 아내가 예약해 놓은 차량을 만나러 간다. 이 회사는 USIM 구매도 대행해 주어 지난 여행 때 공항에서 USIM을 사려다 너무 고생한 아내가 차량 렌트 회사에서 직접 USIM을 구매해 놓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이제 이동 중에 갈아 끼우기만 하면 되니 시간도 절약하고 여행 일정에도 바로 접근할 수 있어 시간을 정말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 인생이던가. 쉽게만 될 것 같은 USIM 은 계속 알 수 없는 이유로 데이터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내 전화기는 되는데 조카 것이 계속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차 이동시간 한 시간 동안 USIM 설정 방법 검색하고 테스트해보느라 모든 노력을 다 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차에서 내리면서 창밖을 보며 새로운 풍경을 살펴보는 등의 여행은 이미 지나갔고 스마트폰 세상 속에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서성이다가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 많이 속상하였다.
어쨌든 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레지던스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설은 좀 낡았으나 매우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이곳 숙소에 들어와서 아이들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이 WIFI AP 세팅 방법이었다. 아니 설상가상이라던가. 숙소 내 WIFI 가 전원이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들어오자마자 수영장 가서 수영을 좀 한 다음에 맛있는 것을 먹고 숙소 근처 유명 관광지를 한번 둘러보고 오는 것이었으나 결국 WIFI 에 전원이 안 들어오는 문제는 집 자체의 문제로 확대가 되어 방을 바꾸는 소동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서 비앤비 호스트도 오고 아파트 관리하는 분과 전기기술자들까지 들락날락 거리는 통해 아무것도 못 하고 순식간에 두 시간이 사라지게 되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이들과 조카들을 데리고 밥을 먹고 온 지금은 결국 수리방법을 찾아낸 아파트 측에서 다시 원래 방으로 옮겨주고 인터넷도 잘 연결이 되는 상황이긴 하다.
이렇게 하루를 돌아보면서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예전 두 다리를 이용하여 여행을 해야만 했던 때가 가장 좋은 기행문이 나왔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여행 관리와 여행지에 대한 정보, 지도 등에서 좀 더 도움을 얻기 위해서 USIM 이든 WIFI 이든 모바일 네트워크 세팅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행의 본질을 훼손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과거 아내와 오스트리아 여행을 갔을 때가 떠오른다. 2007년이었는데 그때는 스마트 폰은 생각도 안 하고 살던 때여서 오스트리아 빈 시내 지도 한 장 얻은 것을 가지고 트램을 타고 돌아다니고 걸어 다니며 여기가 어딘가 찾아보고 했었다. 무작정 걸었던 그 길들이 나중에 찾아보니 모두 대단히 유명한 명소였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며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내와 연예하던 시절에 강원도 등의 여행을 다녀올 때에도 내비게이터가 없던 시절이라 머릿속의 방향과 도로 표지판만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곤 했었다. 갈 때마다 100% 길을 잃어버렸었는데 그렇게 해서 의도치 않게 가게 된 여행 장소들이 월정사 전나무 숲과 허브로 유명한 허브농장 등 일부러라도 가봐야 할 곳 들이었다.
지금은 내비게이터도 지원되고 여행 계획도 이동 중에 찾아 여행관리 앱에 넣어 주면 지도와 연동되어 길 찾기도 너무 쉽다. 그런데 바로 그 편리함을 주는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기면 여행을 이렇게 까지 멈추게 된다는 것에서 많은 생각이 들게 되는 하루였다.
아이들에게 여행이란 그냥 신나게 노는 것이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여행이란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익숙한 일상에서 죽어가던 경외감이라는 나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