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다. 아침부터 울려대는 회사 메신저에 일일이 답을 하고 나니 벌써 아홉 시 반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곧 점심시간에 들어갈 시간이다.
고객 문의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담당하는 분께 전화를 걸어 문제 파악 및 대응 방안에 대한 방향을 말해주고 명료하지 않은 것은 다시 전화 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휴가의 마지막 날을 보낸다. 그나마 같이 온 게 어디냐라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 나 때문에 짜증도 났을 법한 아내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그저 웃어주고 체크아웃 전 준비를 거의 다 해주었다. 정말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오늘은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 호텔 수영장에서 놀다가 맛집에 가서 밥을 먹고 발마사지 받고 공항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벌써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으면서 연초에 읽었던 베가본딩을 꿈꾸어본다. 최소 6주 동안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무전취식이라는 여행 방법에 가까운 여행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나의 경우는 회사를 그만두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베가본딩을 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생각보다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오히려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마치 군 훈련소 화생방 훈련 들어가기 전 방독면을 썼을 때 내 귀에 들리는 긴장된 나의 숨소리를 들을 때처럼 두려움이 느껴진다.
아내가 찾아 놓은 맛집은 현지 맛집으로 반 쏨땀이라는 곳이다. 오후 4시쯤에 걸어서 도착하였는데 이런 모호한 시간에도 사람들이 줄 서있는 그런 곳이었다. 현지인이 많은 곳이라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글을 보며 정말 맛이 어떠한지 궁금하다.
쏨땀은 사전을 찾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뜻을 유추해보면 밑반찬이나 나물과 같은 뜻 같다. 뭔가 야채와 향신료를 섞어서 내어 놓는데 맛이 태국스럽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맛은 전혀 아니다.
이 식당은 이미 우리나라 여행 프로그램에도 소개가 되었지만 기본이 태국에서 유명한 맛집이기 때문에 계속 사람이 많았는데 서빙하는 방식이나 주방의 청결함이나 모든 것이 태국 길거리 음식점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롱간주스라는 주스를 비롯해 닭날개 튀김, 돼지 로스구이, 옥수수 쏨땀, 농어구이 등을 시켰는데 쏨땀을 제외하고는 맛이 우리나라 음식과 매우 비슷하다. 아이들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맛있게 먹어서 똑같은 메뉴를 세 번이나 시켰다.
롱간주스는 달고나를 물에 녹여놓은 수정과 비슷한 느
낌의 음료였다. 우리의 수정과는 계피향이 나고 거기에 곶감을 띄워놓는데 롱간주스는 계피향은 없지만 달고나 맛이 나는 물에 리찌 비슷한 롱간을 띄워놓았다.
음식을 하나씩 먹으며 맛집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예전에 읽었던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에서 초정상자극 (supenormal stimuli)라는 개념을 봤었는데 사람의 맛에 대한 추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그 초정상자극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학자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향신료들이 세균의 번식을 막는다는 것이 알려졌다. 우리는 맛이라는 잣대로 향신료를 평가하지만 결국은 몸에 무해한 음식을 찾는 우리의 정상적인 적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여기서 맛집을 찾는 것은 하지만 정상반응을 넘어가는 자극으로서 초정상 자극이 아닐까.
어미 거위 옆에 굴러가는 알과 테니스공을 놔두면 어미는 테니스공을 알로 생각하는 것이 초정상자극의 전형적인 예이다. 자연계에 있는 물질로만 생각해보면 알보다 둥글고 잘 굴러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그 방향으로는 거르는 장치가 발전하지 않은 경우인데 향신료나 구운 정도라든지 맛의 조화 등은 모두 몸에 해롭지 않은 음식이라는 우리의 정상적인 반응을 넘어가는 것으로 음악, 예술 등이나 사탕이나 정크푸드에 쉽게 넘어가는 경우처럼 맛집 탐방 역시 우리의 본능에 우리의 이성이 지배를 당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맛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분명 태국의 향은 우리나라의 것과 다른데 모두 같은 몸에 해롭지 않은 것에서 출발한 향신료와 식재료들이 어느 정도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를 몸소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닭이라는 소재와 농어라는 소재를 가지고 하는 튀김요리는 우리와 비슷한 맛의 방향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생각해본다. 아니면 공통적이라는 것은 역사가 오래되었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태국과 우리의 공동조상이 살던 시기에 찜이나 튀김에 근거한 요리법들이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태국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출발한다.
여행. 회사일과 여행이라는 것을 분리해내기 어려운 현재의 나에게 여행을 넘어 인생을 생각해볼 시간을 갖는 여행을 언제쯤 갈 수 있을 것인지.
언젠가는 산티아고 길이나 미국 횡단 여행을 해보겠다고 다짐과 희망을 가져 보며 이번 태국 여행기를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