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첫 번째 서울 성곽 순성길 제2길인 혜화문에서 동대문까지의 길을 걸은데 이어 더웠던 날씨가 어느 정도 선선해진 8월 24일 두 번째 순성길 산책에 나선다.
오늘 길은 난도가 높다고 사전에 알려진 남산 구간이 있고 거리가 상당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어떻게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을 하는 상태에서 출발을 하였다.
다음 지도에서 보면 동대문 운동장에서 제3길이 시작하는 것으로 나와있는데 실제로 성곽길 설명들을 보면 제3길은 동대문역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도착했던 오후 3시 무렵에는 거리의 음악가 분이 버스킹을 하던 중이었는데 흥인문 앞이라 그런 것인지 대금으로 연주하는 분께서 공연 중이었다.
한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분께서 무슨 말을 하며 대금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잘 어울리어 사진에 담아 보았다. 흥인문에서 광희문 사이는 성곽이 대부분 멸실되어 안내판을 유심히 보며 걸어 가본다.
광희문 앞에 도착한 뒤에 본격적인 성곽길 걷기를 시작한다. 광희문은 시구문이라고도 불리었는데 조선시대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성문 밖의 공동묘지인 왕십리 등으로 옮기는 데 사용되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성벽은 없지만 안내판을 따라 골목길을 가다 보면 장충체육관과 신라호텔 면세점이 나오고 거기부터 성곽이 연결된 길을 걸을 수가 있다.
성벽을 따라 성안과 성 밖이 나뉘게 되므로 순성길도 내길과 외길이 나뉘게 된다. 우리는 내길을 따라가기로 하고 걸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첫 시작은 신라 호텔부터이다. 호텔 직원과 호텔 고객만 들어갈 수 있는 나무 울타리가 성벽과 나란히 하고 그 사이를 사람들은 걸어간다. 어찌 보면 성벽 안에 또 다른 성벽이 있는 샘이다.
성곽은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 지은 것이므로 용도가 전쟁 대비라고 생각하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왜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예전에 가 보았던 중국 시안의 성벽과는 아예 개념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막길을 걸어간다. 슬슬 목이 마르고 아이들은 지쳐가는데 성곽길에 쉴 곳이 없다. 순성 외길을 성곽 너머로 내려다보니 동네 슈퍼들도 보여서 그냥 바깥 길로 갈 것을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신라 호텔이 끝나고 반얀트리가 나타난다. 반얀트리에서는 국립극장으로 연결되는 길을 잠깐 호텔 안쪽을 통해 걸어가게 된다. 아들이 수영장 입구를 보며 여기서 수영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하다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서 여기에 있는 수영장에 들어가고 싶으면 몇억에 해당하는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약간 멈칫하더니 그럼 우리는 평생 들어가 볼 수 없는 것이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너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들어갈 수 있느냐는 네가 정할 수 있다고 말을 해 주었는데 아들은 그 말에 기뻐하지는 않는다.
신라호텔과 반얀트리 사이의 성곽길에서 찍은 서울
국립극장부터는 가파른 남산길이 나타난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나도 몸상태가 좋지는 않아 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갑자기 빈 버스가 나타나 좋아하며 올라타고 올라간다. 남산에 내려 마지막 경사를 걸어 올라가 서울 전역을 내려다본다. 남산은 누구나 올라가는 산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버스에서 내려 나타나는 마지막 가파른 오르막을 보며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남의 도움을 받더라도 인생에서는 결국 스스로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해보았다. 그리고는 아이들 힘내라고 먼저 뛰어 올라가 보았다. 아이들이 따라잡겠다고 뛰어오다가 이내 지쳐 포기한다.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는 서울은 참 아름답다. 이 서울을 설계했던 정도전은 산들 사이에 위치한 평야지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잠시 생각해 본다.
잠시 아이스크림을 먹고 정자에 앉아 있다가 다시 출발하였다. 내리막길을 가자 아이들은 정말 쏜 살처럼 뛰어간다. 나는 무릎이 아파 뛸 수가 없었다. 아내와 손을 잡고 내려가며 참 시간이 많이 지나가긴 했나 보다고 이야기해본다. 안중근 의사 박물관과 백범광장을 지나 숭례문으로 내려간다. 숭례문에 도착해 파이팅을 한번 외치고 오늘의 순성길을 너무나도 아픈 다리를 이끌고도 짜증 내지 않고 와준 아이들에게 저녁 메뉴 선택권을 맡겨보았다. 아이들이 찾아낸 곳은 명동에 있는 무한 떡볶이 집이다. 정말 내키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아이들의 선택에 따라 그곳으로 향해 걸으며 오늘의 여행을 마쳐본다.
여행을 되돌아본다. 시원한 바람. 청명한 하늘. 뚜렷이 보이는 서울 주변의 산들.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이번 여행에서 느낀 상쾌함. 호텔의 나무 울타리. 그리고 안중근 의사와 백범 선생님. 순성 제3길에서 보았던 것들이다.
정보:
성곽 스탬프를 어디서 찍는 지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데 잘 찾기가 어려워서 여기에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