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의 맛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오늘 확실히 느낀 바가 있으니 이걸 야근의 맛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은 매우 중요한 외부 인증을 받는 날로 여러 외부 심사위원들이 방문을 할 예정이었다. 연래 행사처럼 지나가지만 할 때마다 긴장이 되고 어떤 부분에서 미흡 판정이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실수도 하면 안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는 시스템이 살아있는 곳이 맞다는 생각이다. 다른 곳들은 잘 모르겠으나 이 인증과 관련해서 심사가 원칙대로만 갈까 봐 걱정해 보았지 어떤 관계 때문에 대충 넘어가거나 악의적으로 나쁘게 끝나 보지는 않았다.
어쨌건 이 외에도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하고 나니 벌써 퇴근 시간이 넘었다. 인증 때문에 며칠 고생한 분들부터 다 퇴근하고 밥을 먹고 들어오니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 이제야 업무 시작이다.
한 십 년 전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근무 시작시간이 오후 4시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에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회사에 나름 관리직으로 일을 하면서 무슨 말인지 대충 알게 되었다. 아침부터 우리 부서사람들이 심심할까 봐인지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하고 나면 항상 저녁 5시에서 6시가 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오롯이 내 일이 남는다.
이러한 내 일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게 조직하는 것이 내가 진짜 할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도 없는 순간 나에게 주어진 것만 해나갈 때 조금씩 일이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고 기쁘다!
나는 월급쟁이로 야근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인생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라면 이렇게 반걸음씩이라도 나가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야근을 하면 우리 식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 그건 확실하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한 가운데 집중해서 하나라도 일을 끝내면 참 기쁘다. 이러니 야근의 맛이라고 할 수밖에.
문제는 낮시간의 정신없는 상황일 것이다. 낮 시간에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다면 분명히 일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돈 버는 방법에 변화가 절실하기도 하다는 뜻일 것이다. 돌발적으로 그것도 모두 긴급으로만 들어오는 고객 요청에 대해서 해결하다 보면 끝나는 하루. 매출이 증가할수록 고객 요청도 같이 증가하고 그럴수록 사람도 시간도 많이 필요해지는 상황. 그런 시간이 지나고 혼자만의 시간이 되어야 산적했던 문제 중 하나를 간신히 해결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
이건 분명 비정상인 것이고 예전 구본형 씨가 쓴 책에서의 비유인 낭떠러지에 낡은 동아줄에 메여서 떨어지는 꿀을 받아먹으며 자신은 안전할 거야라고 스스로 속이는 상황보다 더 좋지 않은 월급이라는 꿀에 자기만족이라는 물방울까지 같이 먹고 있는 꼴은 아닌가.
야근의 맛이 아니라 일의 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도록 진짜 일을 잘해나갈 혜안을 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