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분야 - 경제
생명과학을 전공해 살아오면서 도대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떻게 우리가 살아있는 것인지 더더욱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체 내 중요 기관이 운동을 멈추면 죽는다는 것은 알고 있고 출혈이 심해도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 외에는 DNA부터 단백질로 연결되는 정보의 흐름과 세포에서 조직으로 또 조직에서 기관을 넘어 하나의 개체가 형성되기까지의 구조를 아는 것과 이들이 역동적으로 어울려 커나가고 병에 걸리기도 하고 낫기도 하다가 나이 들어 죽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제한적인 지식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지도 알고 또 병에 걸렸을 때 원인 파악만 된다면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는 정도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그러다 문득 자본주의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고 그렇게 해서 바라본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같아 보였다. 자본주의 체계이던 다른 경제 체계이든 간에 경제의 각 주체들을 억지로 신체 기관에 비유할 필요들은 없겠지만 분명해 보이는 것은 돈은 혈액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다른 기관이 다 멀쩡해도 혈액이 없어지면 각 기관들 사이의 소통이 끊기면서 모두 죽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각 경제 주체들이 멀쩡히 다 있어도 돈이 마르면 경제는 침체된다. 이것이 IMF 시절에 직접 목격했던 일이었고 돈이라는 것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는 기억이었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 돈에 대해서 특히 불황 시기에는 돈을 풀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인류 역사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설명한다. 총 7부로 구성이 되어있고 각 부는 5~7장 정도로 세분화되어있다. 그리고 각 부의 마지막에 교훈을 적어 두었다. 가장 첫 부는 트라팔가르 해전 (물론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다)에서 영국이 어떻게 나폴레옹 프랑스에 이길 수 있었는지에 대해 경제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7장은 우리나라가 왜 IMF에 빠졌는지 어떻게 했으면 경제위기 상황을 최소한의 피해로 넘어갈 수 있었을 지에 대해서 전문가의 시선에서 설명한다.
제7부 5장에서
결국 1997년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벌어진 건 금융 시장을 개방하면서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했던 당국의 실수 때문이다. ... 경상수지가 급격히 악화되던 1995~1996년을 전후해 금리가 오히려 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미국 연준 의장 그리스펀이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경상수지 적자가 날로 확대되던 우리나라가 금리를 떨어뜨린 것이 과연 타당했는지 의문이다.
이 짧은 문장을 보면 금융 시장 개방, 고정환율제도와 변동환율제도, 금리의 오르고 내림, 경상수지 적자 등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져야 하는데 모두 제각각 그것도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으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 책에서는 저자가 일부러 각 장마다 자신이 참고한 책들을 친절하게 쪽수까지 표시하여 적어 놓았다. 그래서 경제에 대한 초보자들은 이 책을 중심으로 해서 경제 관련 책들을 읽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위 문장을 읽었을 때는 아 그렇구나 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다만 한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책의 내용들이 혹시라도 사후 확신 편향적인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다. 저자는 역사부터 경제까지 모르는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렇게 두 가지를 하나로 엮어서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현상은 생명현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은 것이 case/control 실험과 같은 이론을 테스트해볼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인간의 경우는 군을 두 개로 나누어서 통제 변수에 대한 결과가 어떨지를, 사후적으로 볼 경우에라도 어느 정도는 평가가 가능한데 경제 현상은 전 세계가 하나로 묶여 있다 보니 개체수로 따지면 한 개로 보이고 결국 역사 속에서 유사한 상황을 보고 현재를 유추해 볼 수밖에 없는데 과거와 지금을 설명하는 변수는 분명 한 개가 아닐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일들을 현재의 관점에서 이렇게 했어야 한다 저렇게 했어야 한다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미래에 그래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가 정말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저자의 여러 가지 설명에 따른 처방이 사후 확신 편향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근거는 없다.
이 책에 대해서 읽게 된 것은 우연히 유튜브에서 엄청나게 추천하는 영상을 봤기 때문이다. (연결)
이 책을 추천하신 분은 이 분야를 그래도 잘 아시는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인데 이 추천 영상을 보면 책을 안 읽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이해 안 가는 이 세상의 작동 원리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는 날을 그려보며 책 독후감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