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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은 오는 선정릉

by 투오아

그래도 봄은 온다. 유독 춥지 않았던 이번 겨울. 그리고 전 세계에 몰아닥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역병. 그럼에도 봄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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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날씨와 꽃을 느끼기 좋은 곳들은 여러 곳이 있겠지만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으로서 회사 근처의 공원을 점심시간에 돌아보게 된다.


비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선조들의 무덤 곁을 걷다 보면 흙 길과 함께 같이 볼 수 있는 예쁜 봄 꽃 들과 이파리가 돋아나고 있는 나무들을 볼 수 있다. 능을 둘러싼 수많은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예전에는 가장 컸을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니 정말 많은 새들이 이나무 저나무에 앉아 지저귀고 있는 것이 귀에 들어온다.


날이 무척 따뜻해졌지만 코로나 때문에 모두 마스크를 쓰고 능을 걷고 있다. 나도 마스크 덕에 내 숨을 직접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걸으며 찬찬히 살피니 자주 가는 동구릉과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구릉은 가운데 길을 중심으로 해서 9개의 능이 펼쳐져 있어서 평지를 통해서 이동을 하는데 선정릉은 가운데에 봉긋한 언덕이 있고 동쪽과 서쪽에 능이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이다. 물론 능의 개수 차이만큼이나 규모도 차이가 많이 나는데 그럼에도 잘 정돈되어있는 흙길 사이로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등이 피어있어 참으로 예쁘다.


걷는다는 것, 거닌다는 것.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따스한 햇살과 꽃들을 보며 길을 걷고 있자니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옆에는 아스팔트 길이 있는데 담장 너머인 이곳에는 이렇게 흙길이 있고 이 길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여기에 계속 있었을 것과 그때의 이곳은 어떤 곳이었길래 지금까지 이렇게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인지

20200326_124144.jpg 봄에는 꽃이 주인공이지만 땅의 주인은 나무인 듯하다. 여기저기 많이 보이는 소나무

중종이라고 하면 실패한 개혁자 조광조가 연달아 생각이 난다. 연산군 이후에 약해진 왕권과 공신의 횡포를 막으려는 왕의 바람으로 개혁을 진행하다 갑자기 왕에 의해서 쫓겨난 조광조. 얼마 안 있을 선거와 이 역병 사이에서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또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일지. 이 역병을 이용하여 주초위왕이라는 글을 새기기나 했던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 정치인은 제발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선시대의 어지러운 날들이 다 지나고 지금은 여기 아름다운 능에 묻혀 있듯이 지금 우리의 이 날들도 결국은 다 지나가겠지. 그리고 멀지 않은 어느 날 오늘 봄날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힘을 합쳐 위대한 날들을 만들어 왔다고 자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선정릉의 입장요금제도. 한번 입장에 1000원. 점심시간만 이용할 경우 3개월 10번에 3천 원이다. 시간제 관람권은 1년 3만 원, 자유입장권은 한 달 만원이다. 이렇게 다양한 요금제도가 있다는 것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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