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가을이 왔다. 새해가 오면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가을이 이렇게 실제로 다가오면 그 뒤에 올 겨울의 찬 공기가 생각나며 벌써라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매년 보는 단풍이지만 가로수의 것을 빼면 제대로 된 단풍을 보지 못하고 살다 보니 올해는 서울대공원이라도 한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부터 벚꽃 필 무렵마다 타러 왔던 리프트이지를 올해는 가을에 아이들과 함께 타보기로 한다.
산의 단풍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만큼 가로수의 단풍 색과는 확연이 다른 그들의 화려함을 보며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 나가야 할까를 생각해본다.
둘째가 뛰어다니기 시작할 무렵에 동구릉으로 늦가을에 산책을 간 적이 있다. 그 당시는 단풍 시기도 지나고 낙엽이 지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정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파리들이 떨어졌었다. 그 낙엽비 한가운데 아이와 함께 서 있으면서 지는 것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던 적이 있다.
대공원의 단풍은 아직은 그때의 낙엽들에 비해서는 젊은 단풍 같았다. 푸른 잎도 간간히 있어 그렇게 생각도 들었지만 이 가을의 공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울긋불긋 색깔들은 생생한 역동감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 화려함은 답답했던 내 마음속을 뚫어주고도 넘치는 상쾌함을 건네주었다.
원래의 계획대로 리프트를 두 번 타고 동물원 꼭대기의 맹수사에서 내렸다. 서울대공원 홈페이지에 보면 동물원 근처로 산책로가 두 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어느 곳으로 가던 동물원을 거쳐서 가야 한다.
원래 전체 길을 다 걷기 위해서는 동물원 입구에서 바로 산책로로 나가야 하는 것이었는데 우선 리프트를 두 번 탈 것만 먼저 생각하다 보니 산책로 중간으로 나가는 길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 덕에 맹수사의 동물들을 볼 수가 있었다. 맹수사에는 호랑이, 표범, 담비, 곰 등이 있었고 동물들도 가을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깨어나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머리 위 통로로는 표범이 멋지고도 위협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지나가고 하는 통에 아이들이 엄청 흥분해서 한참을 바라다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을 보낸 이유로 해지기 전까지 두 시간도 안 남게 되었다.
길을 찾지 못해 동물원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곰사에서 어디로 나가야 산책로를 갈 수 있냐고 묻자 좀 지나 저수지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출입문을 밀고 나가면 된다고 설명해준다.
사무소의 설명처럼 곰사를 조금 지나자 저수지 앞의 갈림길이 나왔다. 그리고 동물원 산책로로 나왔다.
단풍과 낙엽 그리고 포장 길이 어우러져 있는 동물원 산책로누가 제일 큰 나뭇잎을 찾는지 시합도 하고 누가 떨어지는 낙엽을 제일 먼저 잡는지 시합을 하며 걸어가 본다.
가장 큰 나뭇잎은 첫째가 찾아내었다. 내 얼굴을 다 덮고도 남을 정도로 큰 플라타너스 낙엽이었다. 땅을 열심히 걷다 발견을 해 내었는데 꽤나 뿌듯해한다. 떨어지는 나뭇잎은 둘째가 잡았는데 정말 힘겨운 노력 끝에 잡아서인지 크게 기뻐하는 모습이 참 이쁘다.
그렇게 한 삼십 분쯤 걷고 다시 길의 끝자락에서 다시 동물원으로 들어가 코끼리 열차를 타고 나왔다.
산책로에서 동물원으로 들어가는 문
코끼리열차 출발지에 있는 세계의 도시와 거리 코끼리 열차에서 내려걸어 나오는 곳의 분수대 옆에 세계의 도시들과 거리가 적혀있는 이정표가 있다. 이것을 보며 첫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아마도 단풍보다는 가보지 못한 그곳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4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의 가을에는 인생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인생의 어디쯤이 가을일 지는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나무의 이파리들이 붉게 변하고 또 떨어지는 모습에서 또 여러 가지 과일과 곡식들을 얻을 수 있음에서 인생 중반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는 없다. 딱 지금의 내 나이부터 시작해서 아이들 결혼할 때쯤까지가 가을인 것 같다.
가로수들의 단풍과 이런 숲 속의 단풍과 몇 해 전 보았던 낙엽비를 생각해 보며 익고 또 저물어 가는 것에 대한 준비를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를 느껴보는 것이다.
나는 어떤 식으로 사십 대를 마무리하고 오십을 준비해 나가야 할까? 시들시들한 낙엽으로 단풍 지어갈지, 화려함으로 단풍 지어갈지. 작년까지는 내가 재밌는대로 살면 된다고 살아왔는데 올해에는 다른 의미로 가을이 나를 지나간다.
하루하루 겨울로 다가가는 이때에 아직은 생생한 단풍들을 보며 나의 마흔다섯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여행정보
과천 서울대공원은 동물원, 놀이공원, 과학관 등이 있어 어떤 주제를 가지고 방문을 하여도 다 괜찮다.
그중에서 봄의 벚꽃과 가을 단풍은 자연경관을 느끼기에 최고의 편안함을 준다고 생각한다. 길이 포장도로이면서 자연에 둘러싸여 유모차를 밀고 가도 거의 부담이 없다.
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므로 몇 가지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들만 정리해본다.
벚꽃은 여의도 벚꽃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핀다. 여의도가 절정이면 그다음 주에 방문해보면 절정에 다 달았었다.
벚꽃 피는 봄에는 주차가 거의 불가능하다. 오전 시간이 아니면 오후 4시 이후에 차를 가지고 가야 한다. 나의 경우 벚꽃구경 가고 오후에 차를 빼기 위해 한 시간 이상 주차장에서 그냥 서있었던 적이 있다.
가을 단풍 구경으로는 많은 인기는 없는 곳인 듯싶다. 사람이 많지 않아 12시 넘어서도 차를 입구 근처에 댈 수 있었다.
동물원 입장료가 아까우면 호숫가를 그냥 한번 돌아도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