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오영 비원의 가을을 읽고
피천득의 수필 치옹을 읽다 문득 윤오영의 글을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만 배우고 지금까지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곶감과 수필이라는 산문선집을 구해 읽어본다.
피천득으로부터 시작했으니 금아가 나오는 비원의 가을 편을 먼저 읽어보았다.
가장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위대한 사람은 시간을 창조해 나가고 범상한 사람은 시간에 실려 간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이란 시간과 마주 서 있어 본 사람이다.
아 이것이 무슨 말인가? 나에게는 지금까지 한가함이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는데.
그래서 좀 더 윤오영의 글 속에서 한가함이란 무엇인지 음미해 본다.
깊은 산 고요한 절에 숨어 살아도 우수와 번뇌를 벗어나지 못하면 한가한 것이 아니요, 밝은 창 고요한 책상머리에 단정히 앉았어도 명리와 욕망을 버리지 못하면 한가한 것이 아니다. 심심해서 신문광고를 들고 누웠어도 시비와 울화를 안고 있으면 분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요, 피로와 권태가 이미 한가한 것이 아니다. 하물며 생활에 쫓기고 세태에 휩쓸려 한가할 겨를이 없음에서랴.
시간에 실려가며 어떻게는 이 흐름에서 탈출하고자 여기 쭈뼛 저기 쭈뼛하며 살아오는 나로서는 정말 한가할 겨를이 없었구나 싶다. 그리고 인생에서 어찌 보면 가장 한가한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밥 먹고 걷고 하던 그 시간들이 아닌가 싶다.
이 글에서 윤오영은 피천득을 우연히 비원 산책길에 만나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도 존재하는 비원에서 그들의 한가함을 걱정 없이 마스크 쓰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날이 오길 강렬히 바래본다. 그렇게 나도 시간과 마주하며 서 있을 한가함을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