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오영의 '나의 독서론'을 읽고
늙어서 젊은이와 거리가 생김은 세대의 차가 아니라 늙기 전의 나를 잃음이요, 출세해서 교만함은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출세전의 나를 잃음이요, 세속에 물들어 타락하고 명리에 휩쓸려 변질됨은 사람이 다른 게 아니라 그 전의 나를 잃음이니, 한마디로 해서 인간을 잃고 나를 잊은 것이다. 이는 나를 오래 못 본 탓이다. 이제 책 속에서 천고의 인간들을 보고, 숨어 있던 나를 찾음이니 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가. 나는 매양 독서의 환희를 여기서 느낀다.
윤오영은 '나의 독서론'에서 본인에게 독서의 의의란 첫째 자아의 발견이요 둘째 사색의 소재요, 셋째 哭笑의 광장이다 라고 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자아의 발견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이 위의 인용문이 되겠다.
이 분은 인생에 대해서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고 계셨던 듯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지. 이 글을 통해 비로소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지도 없이 잘 모르는 길을 가야 한다거나 숲 속에서 방황을 할 때 어떤 표시를 해 놓는다. 길을 찾으면 다행이겠지만 길을 못 찾을 때는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인데 내가 쓰는 글이 결국은 내가 나를 오래 보지 못 하고 나를 잃어버렸을 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떤 분은 책을 읽고 부자가 되는 법을 찾았다고 한다. 어떤 분은 책을 읽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은 책을 보고 문제를 풀며 시험에 대비한다. 여러 가지 목적으로 글을 읽어 가지만 결국 인생이란 것을 살아오면 앞으로 살아가는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순간이 다가오게 된다. 그것이 언제 오든 그럴 때가 오는데 결국 해답은 자신의 내면에 있을 것이고 그 해답을 찾아내기 위해 출발점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길까지 표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쓴다는 것은 앞으로의 나와 과거의 나와 다른 사람 속의 나를 하나로 역어가기 위해 필요한 3요소가 아닌가 싶다. 그래야 힘든 등산길에 잠시 쉬어 체력을 보충하는 것처럼 나를 채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