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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생각

삶이라는 방랑

나를 나 답게 해주는 것

by 투오아

아침에 눈을 뜨고 천장을 본다. 일어날까 말까 고민을 하다 동이 터오는 것을 보고 같이 일어나 앉는다. 시간은 아침 5시를 조금 넘어서고 침대에 잠시 걸터앉았다가 거실로 나온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강의 동영상을 하나 틀고는 어제저녁에 남기고 잠들었던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렇게 30분쯤 강의를 들으며 주방을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아침공부를 한다. 날마다 반복하는 일상이다. 그 사이에 계절이 겨울에서 여름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날마다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일상의 습관이 잡혀가지만 그것과 달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불확실함만 커져간다.


2009년 첫째가 태어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나는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고 사회로 나왔다. 그렇게 돈을 벌면서 둘째가 태어나고 알뜰살뜰 돈을 모으는 아내 덕에 해외여행도 몇 번 다녀오며 살았다. 아이들이 커나가며 목을 가누고 앉고 기고 뛰던 무릎에 간신히 닿을까 하던 아이들이 어느덧 첫째는 엄마보다 더 커졌고 둘째는 우리 어머니와 장모님 만큼 키가 클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내가 다니는 회사도 벌써 네 번째다. 내가 이렇게 회사를 자주 옮기는 사람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하며 살았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2월에 지금의 회사로 옮긴 것인데 갑자기 인생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몹시 괴로운 상황에 있었다.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힘들지 않다. 모든 우주가 그 신화를 찾는 노력을 도와준다. 마크툽. 모든 것은 기록되어있다.

읽은 지 벌써 10년도 넘은 그 책에서 주인공 산티아고는 긴 여행을 떠나고 결국 원래 앉았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거기에 찾던 보물이 있었다.


마흔 중반을 넘어가며 나 스스로 놀라는 변화들이 있다. 그중에서 특히 놀라운 것은 나는 상당히 꼰대스럽다는 것과 그러면서 또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과 직업의 목적이 자아실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자아실현이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던 나에게 작년부터 올해까지 나에게 불어닥친 이 내면의 바람은 잠재워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조정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고 20살 넘게 차이나는 젊은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서 일을 하면서 나 스스로가 이들과 어색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다 아무 것으로라도 라는 분명히 헛되보이는 갈망만 커져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시도했던 일들이 잘 되지 않는 경험들만 쌓이는 지금에 있어서는 이 모든 것이 내 안의 나침반을 무시하고 살아서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 나침반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변화 방향에 대해서 그리고 왜 내가 생명과학의 길로 들어왔는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왜 사람이 아파야 하는지 그리고 치료제라는 효과도 없는 것들의 가격은 또 왜 그렇게 비싼지 등으로 선택했던 이 길이었는데 지금까지 계속 생명과학 관련 일을 하면서도 그 근처에 다가가 본 적도 없고 해결해 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아 왔다.


나는 무엇이고 나는 어디로 가는가. 결국 해답을 얻으려면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떠나야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떠난다면 내 전문분야 자체를 떠날 것인가. 고민한다고 해답이 나오지도 않는 문제를 들고 있을 바에는 산티아고처럼 일단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럴 때 마크툽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방랑이랑 결국 이미 그렇게 되어있는 것. 먼 여행을 떠나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야 나는 누구였는지 내가 바로 나다운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되지 않을까.


두서가 없구나. 삶도 그러한 것인가. 질문과 불안함이 쌓여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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