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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울어버려!

with 서현의 <눈물바다>

by 이달

불쌍한 앨리스! 앨리스가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쪽으로 누워 한 눈으로 문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지나가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앨리스는 주저앉아 다시 울기 시작하였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다 큰 소녀가 울다니.”하고 앨리스는 말했다.(이번엔 훌륭하게 말했다.) “이렇게 울다니. 뚝! 그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땐 이미 앨리스가 흘린 눈물이 방안에 가득 차서 큰 웅덩이가 되어 버렸다. 웅덩이 깊이는 4 피트나 되어 방 높이의 절반이나 되었다.(중략)

앨리스의 뺨에 짠물이 닿았다. 처음에 앨리스는 바다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난 기차를 타고 돌아가야지.” 앨리스는 스스로에게 말했다.(앨리스는 딱 한 번 바닷가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잉글랜드 해안 어디나 그렇듯이 바다 위엔 여러 기계들이 떠있고, 아이들이 나무 막대기로 모래를 파고, 그 뒤에 줄줄이 여관이 있고, 그 뒤로 기차역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앨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게 사실은 자기 키가 9피트일 때 흘렸던 눈물 웅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웅덩이를 헤엄치며 빠져나갈 곳을 찾던 앨리스는 “그렇게 많이 울지 말았어야 했어”하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서 이런 벌을 받는 걸 거야." 진짜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루이스 캐럴




<눈물바다> 서현 글그림, 사계절

서현의 <눈물바다>를 보자마자, 즉각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의 절정인, 물에 모든 것이 휩쓸 가는 장면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변주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 하지만 눈물에 대한 앨리스와 <눈물바다>의 주인공 아이의 자세는 확연히 다르다.

자신이 흘린 눈물이 바다를 이룬 것을 보고 앨리스는 "그렇게 많이 울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서 이런 벌을 받는 거야."라고 하며 더 큰 상심에 빠지는 반면, <눈물바다>의 주인공 아이는 "시원하다, 후아!"하고 탄성을 지르며 속상했던 마음을 말끔히 떨치고 눈물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드라이어로 말려주면서, 자신의 슬픔도 말끔하게 말려버린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울어야지! 속 시원하게 말끔하게 실컷 울어버려야 시원해지지.

그럼에도 우리는 아이를 실컷 울게 놓아두지 못한다. 이유는 백만 가지다. 그래서 이런 책도 나왔었다.


<울지 말고 말하렴> 이찬규 기획글 / 그림 최나미 / 애플비

이렇게 아이의 울음을 대하는 엄마의 자세 또한 여러 모양이다. 흔히는 "울지 마!"하며 울음을 달래거나 달래지 않는 두 가지 경우를 떠올리겠지만 실제로는 훨씬 미묘하고 복잡하며 세심하게 분화된다.

아무래도 보통의 책들은 아이를 달래려 든다. "울지 마!" 혹은 "뚝!"보다는 조금 더 친절하게 왜 울지 말고 말로 자기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 설명하는데, 어떻게 아이를 이해시켜야 할지 모르겠거나 혹은 그림책으로 엄마 잔소리를 대신하려는 마음이 들 때 집어 들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그건 너무도 당연하다. 애초에 기획이 될 때, 부모님들의 그런 마음에 맞춰, 기획이 되었기 때문이다. 네댓 살 때, 아직 언어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아이들이 울며 떼를 쓸 때, 어떻게 하면 자기 생각을, 감정을 잘 표현하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베이비 커뮤니케이션' 시리즈는 기획되었다. 이 책의 성공으로 이와 비슷한 대화, 소통에 관한 실제적인 하우튜가 있는 그림책 육아서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에 따라 개인차가 많지만, 짧은 문장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할 즈음에 한 번쯤 아이와 같이 보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모든 경우의 모든 아이에게 적용하지 말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아이의 울음을 대하는 엄마의 자세가 엄마 100명의 100가지 경우라면, 아이의 울음 또한 아이 100명에 100가지 이유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아이가 왜 우느냐가 아닐까?




그런 까닭으로 나에게는 울음에 관한 사소한 원칙이 있다. 울음의 원인에 따라, 아이의 기질에 따라 조금 다르게 대한다는 것이다. 뭔가에 감동하거나 울컥하여 울 때는 말없이 안아준다. 떼를 쓸 때는 그냥 두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이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린다. 감기에 걸려 열이 펄펄 나는 경우라면 속상한 마음에 같이 울기도 한다. 억울한 일이 있어서 울 때는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더 울어!'하고 울기를 권하기도 하고 '속상하겠다'하고 마음을 알아봐 주기도 한다. 뭐, 이때도 말없이 눈물만 닦아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때그때 다르다는 소린데, 그게 무슨 원칙이냐고? 있다. 달래거나 울음을 멈추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기다릴 뿐이다. 아이에게 '울지 말고 말하라'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는 눈물바다를 이루도록 실컷 울고 나면 눈물을 그치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하지 않을 준비가 된다. 흔히 속 마음을 털어놓는다. 아직 아기 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1시간은 울어야 그칠 울음이 30분이면 그치고 어느 순간에는 10분, 어떤 때는 5분이면 잦아든다. 물론 그런 규칙 없이 아주아주 길게, 서럽게 우는 날도 있다. 그것은 그 아이가 느낀 감정의 크기라고 생각해 보자. 조금 커서는 그 슬픔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울고 싶은 것을 참고 억누르고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그렇게 많이 울지 말았어야 했어”하고 후회하며 “내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서 이런 벌을 받는 걸 거야."라고 자책하게 두고 싶지는 않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다 큰 소녀가 울다니.”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앨리스는 더 크게 울었다. 흐르는 눈물은 멈출 수가 없는 법이니까.



<눈물바다>를 통해 우리는 주인공 아이가 겪은 너무도 고단하고 힘들어서 눈물이 바다를 이룰 정도로 괴로운 어느 날이 말끔하게 쓸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시험을 봤는데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곤란한 마음, 맛없는 점심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괴로움, 짝꿍이 먼저 약올렸는데 나만 혼나는 억울함, 하굣길에 비가 오는데 다른 부모님들은 다 우산을 가지고 오셨는데 우리 부모님만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박스를 뒤집어쓰고 집에 가야 하는 서러움, 부모님의 성난 목소리로 다투는 소리에 느낀 두려움, 그런 마음 상태로 밥알이 돌 씹어먹는 기분이라 좀 남겼더니 밥 남겼다고 분풀이하는 엄마 때문에 작아지는 마음. 그 마음들을 쏵!!!! 눈물바다로 만들어 쓸어 내버리는 서현 작가의 경쾌함은, 통쾌함까지 느끼게 한다.

사실 눈물은 아이들 것만은 아니다. 엄마도 사실은 오늘 밤, 남모르게 베개닛을 적시며 잠이 들고 아빠도 사실은 회사 건물 화장실에서 넥타이를 입에 물고 울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시원하게 울어버리길!

아이들에게 시원하게 울고 감정을 털어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자!!!!

"괜찮아! 그렇게 시원하게 우는 거야. 우는 건 벌금도 없어."

"오, 괜찮은데! 엄마도 아빠도 우는걸!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야!"

"엄마도 너도 눈물이 바다가 되도록 울면서 멋진 사람이 되는 거야. 그래야 다른 사람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어."

손수건 한 장 챙겨 주며, 같이 울어버리자! 화끈하게 눈물바다를 만들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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