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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가을아!

with 케나드 박 <안녕, 가을>

by 이달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더니, 가을이다. 시나부르 가을물이 들더니, 온 산야에 가을이 무르 익었다.

얼마나 그리운 가을이던가. 몇 해를 여름 나라에 살다 오니, 아이들도 나도 가을이 더없이 반가웠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게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오늘이 내일로, 내일이 다시 오늘로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 놀랍고 반갑다.


아이가 어렸을 때, 뭐, 사실 요즘도, 하나의 놀이처럼 하는 게 있다. 바로 인사하기다. 처음에는 이름만 부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수식어를 넣어 인사를 한다. 짧은 수식어를 넣었다가 나중에는 묘사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안녕, 가을아!"했다가 "안녕, 수줍은 가을아!" 했다가 "안녕, 여름 보내고 급히 달려온 가을아!"가 되었다가 "안녕, 여름 보내고 내가 보고 싶어 성큼 달려온 가을아!"로. 아이들은 생각보다 이 단순한 인사 나누기를, 놀이처럼 즐긴다. 말을 하지 못할 때부터 시작한 이 놀이는 첫째가 5학년인 요즘에도 가끔 한다. 한국에서만 하지 않고 외국에서도 하고 긴 여행을 갈 때도 한다. 인사를 하면서 우리가 있었던 공간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 공간의 특성을 문장으로 표현해 보는 것은, 그냥 눈으로 보고 휙 보내는 것과 다르게 또는 서로 어땠는지 묻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상황들을 형상화시켜 주며, 묘사력을 키워준다. 대략, 그런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해보면 꽤 재미있는 놀이다. 특히 아이들이 언어적으로 폭발적 발달을 할 때, 끝말 잇기 버금가는 재미가 있다.


"안녕, 은행나무야!"

"안녕, 구르는 낙엽아!"

"안녕, 높은 가을 하늘아!"


말이 느린, 두 살 터울의 남자 형제를 키우다보니, 엄마는 저절로 수다쟁이가 되었다. 무려 A형에 말하는 거라면 질색을 하는 내가. 가끔 꽂히는 것이 있어야 입에 채운 자물쇠가 열리는데, 아이들 앞에서는 그런 A형 다움이 통할리 만무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 이 책 <안녕, 가을>을 소개한다.





<안녕, 가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마구 설렜다.

세상에 가을빛을 어쩜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했지?

책 표지에서부터 가을가을했다. 펼치면, 우리는 가을빛 머풀러를 하고 계단참에 선 남자아이를 본다.

보는 순간 우리 집 첫째 아이가 떠올랐다. 멋을 좀 아는 첫째가 단독에 살았다면 딱 저런 포스로 서서, 가을 아침 등교길에 잠시 멍을 때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멋은 조금도 없지만, 생각에 잠기기 좋아하는 둘째도 하늘 한번 바라보고 등교할지도 모른다. 막내는? 현실주의자 막내는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하고 급하게 학교로 가느라 가을이 오고 있다는 걸 싸늘해진 바람으로 느끼며 잠깐, 멈춧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시간 안에 교실에 가서 자리에 앉는 것이 더 중요할 테니까. 이런, 다소 개인적인 상념에 빠져 책을 펼쳤다.


글*그림_ 케나드 박 / 옮김 서남희 / 국민서관

소년은 집을 나와 숲을 지나 개울을 지나 늦여름 꽃밭을 지나 이웃집을 지나 너른 들판과 고요한 언덕을 지나 한다발 꽃을 꺾어 들고 골동풍 가게를 지나 책방을 지나 카페를 지나는 동안 사람들에게 사람들에게 꽃을 한송이씩 나누어 주며, 그동안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레스토랑 앞에서 요리사와 기계공 아저씨에게 한송이씩 꽃송이를 건넨 아이는 마침내 가을 속으로 쑥 들어간다. 노을은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을이 성큼 다가올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모두 여름밤을 보내고 가을아침을 맞는다.

"안녕, 가을!"

아무래도 사진의 성능이 대단히 좋지 않기 때문에, 실물 책의 감동을 전할 수가 없다.

작가 케너드 박이 펼쳐보이는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우리 집 첫째 아이 모습 같았다.

너무도 사적으로 이 그림책을 읽었다. 그림책은 그야말로 취향이니까. 내게 이 그림책은 첫아이와의 기억을 모두 소환해 주었다.


말이 아주 느렸던 첫째 아이를 위해, 늘 수다스럽게, 미친 사람처럼 인사를 해댔었다.


"안녕, 포르르 날아 굴참나무 찾아가는 참새야!"

"안녕, 낙엽옷을 입고 서 있는 빨간 자동차야!"

"안녕,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콩마트!"

"안녕, 오늘은 조금 나른해 보이는 고양이야."


24개월까지 말을 하지 않아 속을 태웠던 아이는, 그냥 묵묵히 듣기만 했었다. 보통의 아이들이 일문어기, 이문어기를 지나 빠른 친구들은 삼문어기에 접어들 그 때에. 덕분에 말이 통하지 않아, 같은 반 여자아이들 중에 더구나 일찍 태어나서 발달 단계에 아주 차이가 많이 나는 누님뻘 친구들의 팔을 물거나 고양이 새끼처럼 핥퀴고 왔다. 그 무렵에는 저녁의 주요 일과가 케이크를 사들고 사과 편지를 써서 아이와 함께 다친 친구의 집을 찾아가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사과하고 것이었다.


"안녕, 은영이니? 안녕하세요, 은영이 어머님! 재율이가 할퀴었다고요. 상처는 괜찮나요? 정말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나윤이는 괜찮나요? 아, 재율이는 조금. 정말 속상하셨겟어요?"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24개월에서 몇 주 지난 뒤, 아이는 일문어기와 이문어기를 스킵하고 바로 삼문어기로 서툴지만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니 그 뒤로는 누군가를 다치게 해서 어린이집에 가거나 학교에 불려간 일이 없었다. 결국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답답해서 몸으로 의사를 표현했던 것이다. 언어적으로 빠른, 그리고 생일이 많이 빠른 누나뻘, 형뻘 친구들과 어울리기에 첫째는 언어적으로 감정 표현이 아주 어려웠을 터였다.


이렇게 말이 느린 아이들은 흔히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자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5세 무렵까지 말을 거의 하지 않아 언어 장애가 있다고 진단을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언어적으로 늦게 표출이 되는 아이들, 학습적으로 자기가 완벽하게 이해해야 표출하는 아이들을 일러 'Late bloomer'라고 한다. 이런 친구들은 여러 단계를 건너뛰고 갑자기 놀라운 발달을 보여, 어느 순간에는 영재처럼도 보인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부모의 애는 타들어간다.


그럴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일 뿐이다. <안녕, 가을>의 가을빛 머풀러를 바람에 날리며 도도하게 걸어가면서도 여름이 된 줄을 알고 가을이 올 줄을 알면서 여름 끝에 핀 꽃을 사람들에게 한 송이 두 송이 나누어 주며, 이제 가을이 올 거라고 믿고 기다리는. 그리고 내일 가을이 올 것을 믿으며 잠들고 일어난 소년 앞에는 기다리던 가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때까지 우리는 "안녕"을 외치며, 다가오는 모든 순간에 인사를 할 뿐이다. 어쩌면 이 책은 한 아이가 여름과 가을 사이를 지나 조금 더 성숙해지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며, '가을'을 기다리는 자세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그 모습에서 부모의 자세를 읽는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가을이 올 것을, 그 때가 올 것을 믿으며 매 순간을 즐기며 기다려 보자.


그래서 첫째는 이제 말을 잘 하느냐고? 상당히!

그래서 둘째는 이제 말을 잘 하느냐고? 상당히!


그런 수다쟁이들이 없다는! 수런수런 낙엽이 진다. 이 아름다운 가을이 가고 우리는 이제 "안녕, 겨울"하고 인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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