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김경희 <괜찮아 아저씨>
이럴 수가! 집에 돌아오니 거실 유리에 놀라운 작품이 완성되어 있었다. 눈병이 나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이틀을 보내야 했으니까. 그래, 정말 답답했을 거야. 아이의 지루한 시간은 많은 흔적을 남겼다. 거실 유리에 놀라운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은 물론이고 한쪽에는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옆으로 빨래가 깔끔하게 개켜져 있다. 문제집, 일기장도 거실에 펼쳐져 있다. 얼마나 심심했으면.
아이는 거실의 그림을 완성하던 중에 들이닥친 엄마를 보고는 언제나처럼 반달눈을 하고 웃는다. 이럴 때, 한 마디!
"오, 괜찮은데!"
세상의 모든 것을 책으로 배우는 경향을 가진 편집자 출신 엄마는 엄마 신입생 시절에, 엄청나게 방대한 육아서를 읽었다. 어린이책 편집자였던 까닭에 아동발달, 아동심리, 몬테소리, 프뢰벨, 슈타이너 등, 어린이에 관한 책이라면 직업적으로 읽었다. 그런 책들을 읽지 않고는 경험이 전무한 처녀가 아이들 책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동화책이나 그림책만 만들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휴, 그런데 읽으면 뭐하나? 글과 현실은 아주 까마득한 차이가 있는걸. 그렇다고 책이 소용없다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없이 책으로 읽은 것이 문제다. 경험을 하고 책을 읽은 것은 물론 도움이 된다. 경험이 먼저이면 책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림책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고 그림책을 읽는 것과 아이를 낳지 않고 그림책을 읽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을 때에도 당연히 '비판적'으로 읽으시길 권한다. 대단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대신에 솔직하게, 책 팔 수작으로 이 글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보장할 수 있다.
편집자 시절에 나에게 그림책은 예술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된 뒤에 그림책은 나에게 마음에 위로와 평화를 주는 위약이었으며, 말로만 똑똑한 육아서와 달리 생각해 볼거리를 던져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도와주는 육아서였다. 그리고 나이고 아이였다. 그림책이 육아서?
"오, 괜찮은데!"
먼저 쉽다. 눈으로 보니까 바로 이해가 된다. 그리고 명징한 메시지가 있고 이때 명징한 메시지는 나한테만 명징한 것이다. 그러니까 읽는 사람마다 읽는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여러 가지 메시지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즉 여러 파장으로 감동을 송출하는데, 나는 그 파장 중에 하나만 나와 맞아도 울 준비가 되어 있는 충성도 높은 독자일 때가 많다. 엄마들의 일상이 그렇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말, 단순한 말 한마디에도 큰 위로를 받는다. 대단한 멋진 놀라운 기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일상의 이런 소소한 가벼운, 별것 아닌 위로를 크게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엄마다.
"오, 괜찮은데!"
정말 괜찮다. 아이에게 "오, 괜찮은데!"라고 말하자, 아이는 혼자 있었던 몇 시간 동안의 멋진 모험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를 쏟아낸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놀라워하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오, 괜찮은데!"
"정말 그랬어?"
"대단하다"
실컷 이야기를 하고 난 아이는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모험보다 학교가 더 재밌어요. 내일이면 학교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나도 처음 거실 유리의 놀라운 작품을 보았을 때, 숨이 턱 막히고 저걸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에서 조금 차분해져 있었다. "그럼, 이제 슬슬 뒷정리를 해 볼까?"하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이는 먼저 "엄마, 그림은 1주일만 보기로 해요. 1주일 뒤에 내가 지울게요." 그러고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들도 치운다. 실컷 떠들고 나니 아주 기분이 유쾌하고 즐거워져서 말이다. 3학년이고 10살 남자아이, 둘째 재원이의 이야기다.
"오, 그거 정말 괜찮은데? 엄마는 이 멋진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영원히 남길게. 그리고 전지를 사다가 붙여 놓고 다리미로 다려보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 유리가 깨지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서 전지에 옮겨 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유리 전문 회사에 문의를 해본 뒤에 실행에 옮기도록 하자."
"오, 그거 정말 괜찮은데요!"
이렇게 거실에 그림은 일주일 동안 세상에 더 존재하게 됐고 나는 내일 유리 전문 회사에 전화를 걸어 전지에 그림을 옮기는 게 가능하지 확인해 봐야 하는 임무를 가지게 됐다. 이 멋진 말! "오, 정말 괜찮은데!" 이 말은 <괜찮아, 아저씨>에서 배웠다.
혹시, 이 그림책 <괜찮아, 아저씨> 읽어보셨는지?
2017년 1월 13일에 초판이 나왔으니, 신간이다. 2016년 제1회 비룡소 캐릭터 그림책상 수상작이라는 황금 딱지가 표지에 딱 붙어있다. 캐릭터 그림책 상을 수상할 만큼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가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 아저씨 표정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주인공은 모자 위에 새 집을 튼 노란 새를 올려다보면서 아빠 미소로 흐뭇하게. 그리고 그 뒤로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다. 하늘은 또 왜 이렇게 맑고 구름이 한 점, 두 점 떠 있어서 맑고 화창한 날을 더 풍요롭게 보여준다. 하늘 인심도 넉넉해 보인다. 그 하늘 가득 구름 모양 글씨가 "괜찮아 아저씨"라고 적혀 있는 이 책.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진다.
"오, 표지도 괜찮은데!"
보통 그림책을 보면 앞뒤 면지를 꼭 살펴보는데, 그건 그림책 평론가들이 말하는 주변 텍스트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의미에 앞서, 책을 만들 때 면지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숨겨놓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편집자들이 화가 선생님들이 주신 그림을 최대한 이용해 면지를 만들고 면지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숨겨놓고는 했고 그 이야기는 글을 읽기 전에 내용을 상상해 보게 하거나, 글의 연장인 경우가 많다.
"오, 모자다!"
아저씨의 모자가 앞면지에 있다면, 뒷면지에는?
뒷면지에는 화관이 있는데. 흠, 모자 자리에 화관이 있다니?
모자를 벗고 화관을 쓰게 되나?
이렇게 마음껏 추리를 해본 뒤에, 첫 장을 펼치니 '괜찮아 아저씨'가 아주 신이 나서 달려가고 있다. 새가 날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달리고 있고 노란 새와 괜찮아 아저씨는 곧 부딪힐 듯도 싶다.
자, 이제 본문으로! (여기에 내가 그림책의 일부 사진을 첨부할 수도 있지만, 사진 없이 상상해 보는 것도 어쩜 재미가 있을 것 같아, 내지 사진은 생략한다. 실제로 이런 글을 쓸 때에도 저작권을 생각하면 무단으로 내지를 막 이용해서 글을 올려서는 안 된다.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저작권은 어느 정도 지키고 싶기 때문에 사진은 생략. 재미있게 내 글을 읽은 사람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서점에서 책을 찾아보자. 정말 마음에 들면 사도 좋겠다. 사실 나는 벌써 이 책을 3권째 샀다. 그중에 한 권은 저자에게 선물을 받았다. 사인을 받은 부분은 자랑하고 싶어서 올려본다.)
이야기는 머리카락이 딱 열 가닥뿐인 아저씨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가진 게 없는 아저씨라는 소리다. 그런데 노란 새가 날아와서 아저씨의 머리카락 한 올을 물고 날아간다. 이런, 아홉 가닥! 그런데 아저씨 머리카락을 세 올씩 세 묶음으로 묶고 엄청나게 행복해하면서 이렇게 외친다!
"오, 괜찮은데!"
맞다. 바로 이 책에서 "오, 괜찮은데!"를 가져온 것이다. 이 말이 좋아서 일부러 소리 내어 읽어봤다.
책이 없더라도 한번 따라 해 보자. "오, 괜찮은데!" 그림책이 있으신 분들은 괜찮아 아저씨의 표정을 따라 하며 "오, 괜찮은데!"를 외쳐봐도 좋을 것 같다.
"오, 괜찮은데!"
뒷 이야기는 역시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잃어가는 아저씨. 열 가닥이었던 머리카락이 마침내 한 올도 남지 않았다. 괜찮아 아저씨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지 않자 어떻게 했을까? 물론, 그는 "오, 괜찮은데!"를 외쳤다! 그가 조몰락조몰락 뭔가를 하더니 소중한 머리카락 열 가닥을 모조리 잃은 난감한 상황에서도 "오, 괜찮은데!"를 외칠 수 있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는데.... 뒷부분이 궁금하다면 그 부분은 서점에서 찾아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 사보신 분들은 이 글 안에 스포일링이 있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지만, 책을 펼치는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이 책에서 건진 소중한 말 "오, 괜찮은데!"가 입에 붙자, 하루가 꽤 근사해졌다. 아이 셋을 아침에 챙겨서 학교에 보내는 일도 생각해 보니 대단히 멋진 일이 아닌가. 아이들 옷을 입히고 "오, 괜찮은데! 오늘따라 더 멋져!"라고 말하니 셋째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동생들을 거느리고 학교로 향하는 첫째의 어깨를 툭 치며 "오, 대단한데!"하니 첫째도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힘차게 학교로 향한다. 이거 뭐야? 그야말로 마법의 주문이니야? 게다가 아이들에게만 통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도 위로를 준다.
아이 셋을 낳아 키우는 동안에, 살집이 많이 붙어, 별명이 무민이 된 나인데도, 오늘만큼은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오, 이쁜데!"
남편이, 혹은 아이들이 내게 이 말을 해주길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나는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를 쓰담 쓰담하면서도 충분히 말해줄 수 있었다.
"이봐요, 당신! 오늘 아주 멋져요!"
이렇게 멋진 책을 쓴 작가를 어떻게 만나지 않고 살 수가 있을까? 그래서 작가를 만나보았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작가님을 만난 놀라운 이야기는 다음 번에!
그림책으로 육아하기!
오늘의 육아팁
하루에 10번만 외쳐보자!
"오, 괜찮은데!"
흥, 이 말로 충분하지 않다!
"당신이 최고예요! 우주가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고요!"
그 증거가 바로 당신,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이에요!
밤하늘의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보자.
"당신 정말 멋져!"
"당신 정말 빛나!"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냐고요?
오, 그거 괜찮네요! 찾아봐야겠어요! 찾으면 있을 거예요, 근거! 팩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