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달 Jan 03. 2022

닥치고 방문하라 7화

왜 기다려야 하나요? _ 이달의 닥방사


K은행 부지점장인 남편 DJ는, 평생 남의 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열린 문으로만 들어가도 충분한 삶을 살았거든요. 참 부럽죠? 그러다가 영업점에서 기업 업무를 보게 되면서 DJ는 필요를 느꼈어요. 영업점의 기업 업무는, 열리지 않은 문을 두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문제는 생전 처음하는 시도라는 점이었어요. 그때 남편이, 


DJ : '닥방(닥치고 방문)'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달 : 그게 뭐 어려워? 그냥 "안녕하세요? K은행 KDJ 부지점장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면 돼. 열라고 있는 문이니까. 

DJ : 안 열어주면 민망하잖아. 

이달 : 열어보지도 않고, 안 열리는 걸 어떻게 알아? 

DJ : 필요없다고 하면 어떻게 해?

이달 : 필요없다고 하면, 명함이랑 주려던 자료라도 남기고 오는 거지 뭐. 


그때 알았어요. 닥방이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닥방이 어려운 이유에 한 포인트가 '거절당할까봐' / '시간 낭비일까봐.' 등이라는 것. 이 허들을 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 그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더랍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닥방이 어려운 일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나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는 슬퍼요. 그렇지만 내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어떤 사람이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는 그다지 복잡한 마음이 들지 않아요. 안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미리 복잡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인사도 건네고 문도 힘껏 두드려 보았지마 열리지 않는 문 안에는 사람이 없어서일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DJ가 덧붙였어요. 


DJ : "필요없어요. 가세요." 이렇게 말할 때 기운이 쏙 빠져. 

이달 : 그런 말에 기운 안 빠질 사람이 어딨어. 하지만 그 분이 아직 내가 주려는 게 필요한지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지. 처음엔 명함, 다음엔 자료, 다음엔 그냥 인사, 다음엔 안부. 이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거지.  


이런 대화를 나누다 다시 깨달았어요. 닥방을 할 때, 상대가 나를 만나보고 싶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게 정보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나를 만나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려야겠구나. 


그래서 DJ는 닥방을 잘 하게 되었냐고요? 이런 대화 끝에 그는 몇 가지 포인트를 잡았어요. 팩스로 먼저 자료를 보내는 방식이에요. 팩스로 은행에 관한 정보를 보내고 전화로 "방금 팩스 한 장 넣었는데요." 이렇게 말을 건네면 상대가 팩스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팩스를 수신했다는 확인을 하면서 보낸 자료를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1차적으로 보지도 않고 "필요없어요"는 생략이 됩니다. 이때 중요한 건, 내가 상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서점에 제안을 보내는 데, 그 서점에 대해 아는 게 없으면 곤란해요. 그 서점의 특성을 충분히 알아야, 내 책이 그 서점에 준비가 되어도 최소 월에 몇 권 정도 판매가 될지를 생각하여 제안을 드릴 수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단계가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뭐 그런 거죠. 닥방이더라도 정보가 중요해요. 그래서 DJ는 팩스를 넣기 전에 그 회사에 대한 분석을 하더군요. 중요한 지점이죠. 

이런 두 단계를 거치면 거절 횟수가 줄어듭니다. 상대에게 필요한 상품을 제안하게 되니까, "필요없어요"를 당할 횟수가 줄어듭니다. 그렇게 제안한 상품이 잘 성사가 되면 무엇이 좋을까요? 실적이 올라가는 거요? 아니에요. 효용감이 올라갑니다. DJ만 봐도 그래요. 닥방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엄구렁을 놓던 그가, 끝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죠. 그리고 성사 횟수가 많아지고 자신이 한 일이 그 회사에 필요한 일이었다는 확신이 들면서부터는 즐기더라고요. 이런 효용감이 닥방 선수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어깨에 자신이 들어가요. 이런 상태에 이르면 문턱을 넘어 들어가는 여러 가지 방식들에 자신이 생깁니다. 왜요? 스스로 알거든요. 나와 나의 상품을 필요한 사람이 저 안에 있다는 걸요. 감각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거절을 받더라도 슬픈 마음이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꼭 필요한 제안을 드릴 거였는데. 그러면 이런 인사가 절로 나오지요. 


"다음에 필요하시면 잊지 말고 찾아주세요. 꼭 필요한 상품을 제안드릴게요. K은행 KDJ입니다. 명함 두고 가겠습니다." 


대략 이렇게 된다는 말이지요. 


전국의 서점을 다니면서 모두가 나를 환영했겠습니까? 많은 서점의 대표님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셨지만, 어떤 서점에서는 출판사 대표라고 하면 기다리던 독자가 아니라 실망을 하시기도 하시죠. 그럴 때는 견본책만 드리고 오지 않고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두어 권 사들고 나옵니다. 책을 사면서 독자의 마음으로 서점 공간을 누벼 봅니다. 그런 상상을 해 보면 서점을 이용하는 독자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서점이 어떤 성장을 하고 언제쯤 나를 필요로 할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에 해당 서점에 정말 어울리는 책을, 소개할 힘이 나에게 생기더라고요. 


그런 1년의 과정을 마친 뒤에, 사실 나는 아주 다른 닥방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번 화는 여기까지. 

작가의 이전글 닥치고 방문하라 6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