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달 Jan 04. 2022

닥치고 방문하라 12화

왜 기다려야 하나요? _ 이달의 닥방사 

아마도 재미를 붙인 모양입니다. 댓글이나 좋아요를 많이 남겨주시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놓고. 댓글, 좋아요랑 무관하게 하나 더 남기고 오늘 오후의 라방 준비합니다. 


남편 DJ와 함께 새롭게 시작한 스타트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솔까말(솔직하게 까놓고 말하면) 하루는 이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 엄청난 자신감이 들었다가 다음 날에는 괜히 어깨가 처질 때가 있다고 말했어요. 이미 너무도 멋지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라고요. 그랬더니 DJ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 사람이. 당신에게는 닥방사가 있잖아! 훌륭한 출판사가 너무 많아서 나까지 출판을 해야겠냐? 훌륭한 작가가 너무 많은데 나까지 써야 하냐? 그런 생각 하지 말고 나와 함께 할 독자를 찾아서 나선다던 이달은 어디에 있냐? 다를 거 없다. 


이렇게 정리를 해줍니다. 이래서 어떤 일들은 혼자보다 둘이, 셋이 함께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면서도 한 친구에게 전화했을 때, 그 친구가 "그거, 사기 아니야? 왜 너야?"라는 말을 하자, 풀이 좀 죽었더랍니다. 나도 자신도 스스로를 믿지 못했던 겁니다. 왜 날까? 나는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그래, 나였어야 했네!" "내가 꼭 필요한 일었네." 이랬다가, 자고 나면 마음이 작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뉴북나우 꿀시사회를 할 때는 또 어땠을까요? 신미정 서하경 선생님의 엄청난 응원과 지지를 받으면서도 작아지는 마음이 드는 문자 하나에 풀이 죽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출판사를 계속하고 뉴북나우를 계속하고 책을 계속 쓰고 왜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걸까요? 


남편의 말대로, 재밌으니까. 해야 하니까. 필요한 일이니까. 그러고 시작했다면 시작했으니까. 재밌으니까........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이 모든 포인트에서 닥방에 가장 큰 에너지원은요, "살아야 하니까"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린시절에 어머니를 통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77년 생이지만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내 인생에 첫번째 책은 교과서였고 단행본은 초등 2학년 때 선물 받은 안데르센의<그림없는 그림책>이었습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서사는 구전으로 전해 들었는데, 다행히도 나의 어머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분이었고 그때는 아무리 바빠도 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했습니다. 그런 덕분에 소설책 100권 읽는 기분으로 풍부한 이야기의 바다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그시절 가장 내가 재미있게 들었던 이야기들은, 옛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어린 시절에 방물장수를 했던 외할머니를 따라 여기저기 동네를 떠돌아 다닌 이야기였거든요. 그외시절 외할머니는 아이들은 해마다 한 명씩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아이들을 업고 외할머니 뒤를 졸졸 다녔는데, 어머니 나이가 예닐곱 살부터였다고 해요. 외할머니를 따라 예닐곱 살인 우리 어머니가 젖먹이 동생을 업고 다니는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가본 적이 없는 무주 일대의 여러 마을과 마을의 사람들과 그 마을의 부인네들이 주로 무엇을 샀는지와 그 물건들을 팔아가며 얻은 정보로 외할머니가 끝내는 점방을 하나 낸 이야기를 즐겨 들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점방을 내고 어머니에게 동생들을 돌보며 집안일도 거들고 점방도 보게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사입하고 또 시간을 내어 동네를 다녔고 작은 점방들에 물건을 대어주는 일을 하셨다고 해요. 나는 어머니가 그런 과정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음에도 일머리와 장사머리가 생겼다 믿어요. 그렇게 장사를 열심히 하고도 외할아버지가 한량이라 가난을 못 면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어머니의 삶이 한 없이 고단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 이야기의 핵심은요, 닥방에는 '살자고'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입니다. 


'살자고' 그 시대의 닥방 영업인 방물장수를 선택한 외할머니는 사실 양반집 맏딸이었다고 해요. 어려서 살림은 고사하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방 밖에 나가서 노는 일도 거의 없었다고 해요. 나는 훗날 무던이라는 책이 계수나무에서 나왔을 때, 무던이의 삶에서 할머니의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참 평온하게 살았던 할머니는 결혼과 함께 아주 다른 삶은 살게 된 것입니다. 아이를 낳아서 키워야 하는데, 가진 돈이 없고 전쟁을 치르고 하면서 방물장수로 나선 것입니다. 살자고요. 살자고 방물장사를 시작한 할머니에게 닥방은 생존의 필수 요건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닥방사를 쓰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살자고'의 문제가 앞에 놓여서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미션을 받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살자고의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고 닥방사를 쓰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닥방사를 살아보니요, 그건 지금 시대의 정서와 아주 닮아있습니다. 외할머니의 닥방사와 나의 닥방사가 무엇이 다른가요? 그때는 발로 직접 가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필요를 발견했고 이제는 랜선으로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기껏 라제통문을 넘어서 경상도로 가셨다면, 나는 순간에 이렇게 전국에 있는 모든 분에게 닥방을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닥방 역사의 새로운 문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 문안으로 같이 갈 동지들과 함께요.

작가의 이전글 닥치고 방문하라 11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