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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 Jan 04. 2022

닥치고 방문하라 13화

왜 기다려야 하나요? _ 이달의 닥방사

신년 인사로 올린 번외 편을 보고 연재를 계속해 보라는 말씀에 힘을 얻어서. ^^ 계획 없던 글쓰기로 구성이 짜임새 있지는 않지만.... 몇 개의 이야기를 더 해보려고 해요. 


이번에는 2016년도부터 최근까지 <우리 아이 책장, 괜찮은가요?> 또는 <책장 처방전을 써드립니다> 정도의 제목을 달고 강의와 함께 일정 지역 또는 개인 '요청을 받고' 가정방문 하듯이 닥방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흥미로운 지점은 그냥 닥방이 아니었다는 점. 요청을 받아 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닥방과는 다르고 '가정방문' 또는 '홈서비스'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수년에 걸쳐 100여 회를 거듭했다는 겁니다. 


시작은 전라도 광주였어요. 당시에 절친이 전라도 광주에 살아서, 세부에 살던 우리 가족은 여행 삼아 전라도 광주에 가게 되었어요. 광주와 담양 등으로 짧은 여행을 하는 과정에 어떻게 절친의 지인들의 집을 닥방하게 되었죠. 사전 예약도 없이 그냥 가게 됐어요. 그렇게 무방비의 가정집을 세 곳이나 다니게 되면서요. 아하!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세 집 모두에 거실서재가 있고 거실서재에 다른 단행본 한 권 없이 K회사의 전집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던! 것! 입! 니! 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베스트셀러였던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과 같은 책들이 서너 권. 한쪽 모퉁이에서 나달나달 낡아지고 있었어요. 아이들이 읽고 또 읽은 모양으로요. 


누가 머리에 커다란 돌덩이를 꽝 내리 꽂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떻게 임의로 방문한 세 가정에서 이렇게 같은 패턴을 보이는 것인지가 너무 궁금했겠죠? 그래서 물었겠죠? 어떤 대답을 들었을까요? 답을 찾았을까요? 


세 가정의 어머니들이 모두 K회사에서 제공하는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책만 구입한 집이 있는가 하면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듣던 끝에, 결국에는 K회사의 선생님이 되신 분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전라도 광주에서 K사는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회사였습니다. 아파트마다 작은 도서관을 열어 자사의 책을 전시하며 어머니들에게 책의 중요성을 알려주기도 하면서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책을 오랫동안 만들고 도서관을 하고 활동가로 일하고 있었던 나의 입장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먼저 아이들이 손이 닿지도 않을 만큼 높은데까지 책으로 빽빽하게 채운 책이 아이들이 손이 닿기 힘들게 뻑뻑하게 꽂힌 채로 있다는 점이며,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고등학교 때 볼 책까지 모두 거실에 진열해 놓았다는 점이며, 단행본 책은 몇 권이 전부라는 점 등에서 놓치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이럴 때, 나는 닥방 기획을 시작합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책장들을 볼 수 있을까? 책장은 한 사람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인데.... 아이들의 책장은 나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줄까요? 아이들의 책장은 어떻게 구성이 되고 아이들은 자신의 책장에서 어떤 꿈을 설계할까요? 


그래서 제일 처음 과천 타샤의 책방에서 <우리 아이 책장 처방전>이라는 이름으로 가정방문을 시작했어요. 우리는 요청을 받은 집으로 가서 책장을 살피고 아이들을 만나고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 어떤 것인지, 어떤 식으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함께 찾아갔어요. 아, 이 닥방 이야기는 따로 연재를 해야 할 만한 내용이지요. 


하지만 그 닥방을 통해, 차 한잔을 얻어 마시면서 만난 100여 명의 아이들의 책장에서 내가 얻은 인사이트는 어마어마했어요. 책장만 봐도 잠수네구나, 푸르미네, 발도르프를 하시는구나. 이렇게 구분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요. 이 집은 엄마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구나. 이 집은 부모님이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설계하셨구나.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시는구나. 예술 쪽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책을 읽으며 연구자로 성장하면 하는 바람이 있으시구나. 그러니까 책장에서 부모님들의 마음이 읽혔어요. 


그리고 닥방을 통해, 나는 공간에 대한 경험도 하게 되었지요.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우리는 책이 차지하는 위치와 관계, 욕망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라 모두 비슷비슷하게 살겠지 싶었는데, 막상 만나본 100여 집의 책장에서 우리는 그 집만의 독특한 특성을 마주했습니다. 


다만, 그 독특한 특성에서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게 흥미로운 점이지요. 아이들의 모습은 책상에 아무렇게나 둔 낙서와 일기, 책상 밑에 숨겨 놓은 책, 침대 위에 소품들에서 드러났습니다. 나는 그렇게라도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메시지를 표출하는 게 고맙고 반가웠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아, 오늘의 닥방은, 닥방을 아주 프로젝트로 해버린 이야기였습니다. 요청을 받아 가는 닥방, 커피 한 잔에 나의 여러 시간을 내주며 경험을 샀던 이야기. 오늘도 재미있었나요? 기회가 된다면 책장을 보러다닌 이야기는 좀더 구체적으로 써보고 싶고 또 조금 더 많은 집에 가보고 싶어요. ^^ 초대해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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