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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 Jan 05. 2022

닥치고 방문하라 16화

왜 기다려야 하나요? _ 이달의 닥방사 16화 

닥방에 전술이 있을까? 닥방 전문가들에게는 자기들만의 전술이 있을 것입니다. 나의 경우는,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라도 전술을 가지는 편입니다. 어떤 일이든 즐길 수 있어야 질리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으니까요. 즐기는 포인트가 있어야 에너지 풀땅 충전이 되죠. 나의 전술은 컨셉 잡아 인상 남기기. 


그래서 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정확히 영업을 목적으로 닥방을 했던 7개월의 역사가 내게 있었더라고요. 스물일곱되던 해의 1월부터 그해 여름인 7월까지.  G출판사에서 영업자로 7개월 일했지요. 

당시 27살 꽃띠, 영업. 누가 나를 마케터, 영업자라고 부르는 게 어색했던. 출판 영업 무경험자. 그럼에도 나는 제법 그 일을 훌륭하게 해내어서 G출판사 대표님께서 아껴주셨지요. 영업자로 타고났다는 소리를 듣고는 했어요. 문제는 영원히 영업자로 살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었지요. 

몇 가지 지점이 있었는데, 먼저 나는 영업도 좋지만 책 만드는 일을 더 좋아했어요. 영업은 내게 피시니였지 메인 테마가 될 수 없었어요. 하나 더, 당시 영업은 정말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이었거든요. 필요한 경우는 몇 만원을 수금하기 위해서 대자로 드러누워야 했어요. 그것도 문방구 어음이라는 것을 받기 위해. 가장 많이 눕방 시전을 한 곳이 모두에게 어두운 기억으로 남은 송땡 총판이라는 이야기를. 회사를 위해 해야했지만, 할 때마다 참으로 모멸감을 느꼈답니다. '다음에 오세요'에 속아 수 개월째 돈을 못 받아 애를 태웠던 총판도 있었죠. 


그럼에도 상상하는 닥방자, 이달은 영업자의 이상적 모습을 상상했고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영업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때마침 인도에서 45일을 보내고 온 뒤라, 에너지가 넘쳤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어요. 그리고 나에게는 캐리어가 있었고, 스튜어디스의 서비스에 감화가 많이 되어 있었어요. 게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스튜어디스를 꿈의 목록 3번째 칸 정도에 써 넣었거든요. 키가 159.5(지금 키는 그보다 작으니까, 나의 키를 확인할 생각은 마시길)였는데. 거기서 더 자라지를 않아서 스튜어디스가 되는 건 포기했지요.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사를 잠깐 기웃거려 보았지만 회화 공부가 부족해서 스스로 빠른 선긋기를 했더랍니다. 그럼에도 스튜어디스들을 볼 때마다 꼭 그런 친절하고 아름다운 미소는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27살 초보 영업자는 닥방 컨셉으로 '스튜어디스' 컨셉을 잡습니다. 


G사에 첫 출근한 것이 1월이어서 한 겨울이었는데 무릎까지 오는 치마에 긴 부츠를 신고 캐리어를 끌고 머리는 앞머리를 홀딱 까서 스튜어디스처럼 뒤로 꽉 묵고 화장도 단정하게 하고는 서점을 다녔어요. 자료 사진을 올리면 좋겠는데.... 어딘가 있을 텐데. 사진이 없더라도 그 당시의 나를 기억하는 G사 대표님이 계시니까.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G사 대표님께 ^^ 언제라도 확인 가능해요. 

여기서 한 가지 컨셉트 더 들어갑니다. 캐리어! 기내용 여행 가방에, 메리 포핀스 컨셉으로 뭐든 말만 하면 다 나오게! 견본책은 기본, 폴대와 POP, G사 출간물의 내용을 홍보하는 신문, 언제라도 서점 직원을 도와 책정리를 도울 수 있도록 치마 안에 받쳐 입을 여벌의 바지, 부츠를 벗고 갈아신을 수 있는 운동화, 면장갑(책먼지가 많아서, 책 정리하려면 필요), 그리고 귤, 쿠쿠다스와 다이제스티, 가나초콜릿 같은 걸 챙겨 다녔어요. 여기서 비밀하나 공개. 참고로 달달북스라는 이름에 생애 처음 맛본 아이스크림 같은 책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작 단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분들을 위해 챙겨다녔어요. 그냥 열면 많은 것들이 나오는 가방이었어요. 그 가방을 끌고 서점에 나타나는 것부터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되도록. 오래 잊지 못하게 만들자. 왜냐면 그 당시에도 지방 서점은 한두달에 한번 가는 거였어요.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 중에 서점이나 출판사에 종사하거나 책에 관한 것들이 궁금한 분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하고 20년도 전에 있었던 묵은 닥방에, 먼지를 털고 꺼내보았습니다. 

라떼 버전 닥방 전술은 스튜디어스 & 메리 포핀스의 가방 컨셉. 


20년 뒤에 나는 서점 투어가이드 컨셉으로 방향을 선회합니다. 여럿과 함께 놀러가듯 가는 방식으로 서점에 책을 사러 다니면서 달달북스 명함을 전하는 방식.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서점 대표님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말없이 엄청 많은 책을 사고 출판사 한다고 명함을 건네고 왔었는데 말입니다. 우르르가 컨셉일 경우가 많아서 살짝 묻히기도 했거니와 심지어 책을 출간하기 전이라 책 없고 명함만 드려서 까마득히 잊혔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20년 세월이 흐른 뒤에 서점 닥방은, 책이 나오기 전에 간다, 독자로 책을 잔뜩 구매한다, 명함을 하나 드리고 온다, 여러 손님을 모시고 다시 나타난다. 이런 거였나 봐요. 컨셉은 아니지만 간절한 마음에 그리 했던 듯. 


세월이 흐르면 닥방의 전술로 변하는 게 맞죠. 이제 나는 더 이상 27살이 아니고 그때의 컨셉은 구현 불가니까요. 지금은 그림책전문 서점들이 많아졌고 그림책전문 서점들에서 어떤 책을 보느냐가 인스타 포스팅과도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고 서점 대표님들을 따르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나 여기 있어요!"를 꼭 해줘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전 화에서 잘 팔리는 책에 견본책으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을 동봉하듯이 친구와 함께 나를 독자의 모습으로 출연시키는 방식으로 실은 거의 모든 서점을 한번 이상 다녔었다. 그런 날 기억하시는 대표님 계시면 댓글을! 밥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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