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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 Jan 07. 2022

닥치고 방문하라 18화

왜 기다려야 하나요? _ 이달의 닥방사 

가만히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아주 어릴 때 어머니가 약국 앞에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내가 끝끝내 어머니의 바지자락을 잡고 놓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무섭고 두려웠던 기억이 지끔껏 생생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요? 어머니는 나를 약국 앞에 두고 가셨어요. 그래야만 하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큰소리로 외쳤어요. 


"도와주세요.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경찰서에 데려다 주세요." 


82년 어느 봄, 사당동 남성시장 골목에 약국에서 여섯살 쯤 되어보이는 소녀가 이렇게 외치는 걸 보셨다면 그건 분명히 나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기다려 본 적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늘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대부분 늘 기다립니다. 

서울살이 시작하고 어린시절에는 늦은 저녁에 부모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며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기형도 시인의 <엄마 생각>을 어려서부터 좋아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간 아버지를 기다려야 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잠깐이 몇 년이 되었던 그런 일들요. 또 수없이 많은 결과들을 기다리며 초조해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올 것이 분명하고 약속된 시간이면 기다림이 해제되는 그런 경우는 문제가 없습니다. 구체적이지 않은 '잠깐'이 길어지고 언제 끝이 날 수 없는 '기다려'가 문제이고 결코 내 차례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어떤 일들이 내게는 어려운 것입니다.

 

출판사를 시작하고 새롭게 영업과 마케팅을 시작하려니 연대가 필요했습니다. 출판계에는 다양한 모임들이 존재합니다. 영업이나 마케팅 정보를 교류하는 그런 단체들은 작은 출판사에게는 동아줄과 같은 정보를 나누는 기관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책을 4권 밖에 내지 않아서 어느 곳에서 가입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시겠지만 나는 가능하면 다 찾아가서 확인을 하는 편입니다. 혹시 모를 가능성이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가진 능력으로 안으로 쏙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언저리에 머물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모든 곳에서 일년에 5종 이상의 책을 내야 하며, 협회원들이 모두 동의를 해야 하며! 

유일하게 가입이 가능한 곳이 그림책협회였습니다. 그림책협회 덕분에 뉴북나우 꿀시사회 1회도 시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의 인큐베이팅이 가능했습니다. 그런 덕분에 달달북스는 현재 그림책협회에서 출판분과 소속으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이 일을 경험하는 과정에, 나의 닥방 정신이 다시 발동을 겁니다. 


왜 기다리고 뽑아주기를 바라야 하지?  내가 안된다는 말은 나와 같은 출판사들이 모두 안된다는 뜻일 텐데. 그럼 그 조건으로 모임을 만들어야겠군. 1년에 5권의 책을 내지 못하고 있는 작은 출판사. 이제까지 낸 책이 5권이 안 되는 출판사. 마케터가 없는 출판사. 그래서 앞으로 클 수 밖에 없는 출판사. 그래서 '클수'라는 이름으로 작은 모임을 만들었어요. 예를 들면 고등어 모임에 끼지 못한 멸치들의 모임일 수 있어요. 사실 멸치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참다랑어일지도 모르는 클 가능성 밖에 없는 작고 작은 출판사의 연대.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요? 평소에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출판사들을 단톡방으로 묶었어요. 조직에는 여러 가지 회칙을 필요로 하죠. 클수에는 그런 회칙을 두지 않으려고요. 클수의 회원들은 클수이면서 다른 모임에 가입하여 연대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클수의 정체성으로 벽을 치면 클수는 더 많이 크고 성장할 가능성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클수에는 벽이 없어요. 누구나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지만 원한다면 마음껏 함께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고 함께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그런 모임이에요. 물론 어떤 모임에나 엑스맨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엑스맨을 속출하기 위해 여러가지로 형편이 복잡다단 어려운 사람들의 발목을 묶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면 클수에 대해 나 또한 집착하는 마음이 생길 거고 초심을 잃고 처음에 나에게 기다리지 않고 닥방모임을 만들게 했던 어떤 조건들을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내걸 게 될지 모르니까요. 왜 그래야 하죠? 


조직을 꾸리기 위해, 나는 옳고 너는 틀리고 나는 되고 너는 안 되고가 조직을 만든 사람으로 인해 규정이 되어야만 색깔이 분명하고 일을 잘하게 되는 걸까요? 조직이라는 건 과연 누구를 위해 왜 생기는 걸까요? 조직이라는 말 자체가 부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칼로 싹둑 잘라낼 수 있는 관계들이 있나요? 내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저기에는 속하지 못하는 그런 벽들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유연하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이 시대에 과연 맞을까요? 


그래서 클수를 만들었어요! 클수에 함께 하실 분들! 클 수 밖에 없는 출판사들의 모임은 출판사의 규모와 앞으로의 계획을 묻지 않습니다. 오직 성장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출판사들만 여기 모이세요! 함께의 힘으로 함께 닥방을 하며 성장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추월해 버리자고요. 


괜히, 어머니 바짓자락을 붙잡고 떨지 말고요. 울어버리고 경찰서를 찾아가는 게, 나의 닥방 철학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경찰서에서 만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아예 경찰서에 맡겨 놓고 가더라도 그냥 두고 가는 일은 없었죠. 내게는 시계도 생겼습니다. 삶은 나아지라고 '클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부터 알았습니다. 여러분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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