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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 Jan 08. 2022

닥치고 방문하라 20화  

왜 기다려야 하나요? _ 이달의 닥방사

어려서부터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앞으로'였어요. 이 노래 기억하시나요? 


앞으로

윤석중 작사, 이수인 작곡, 1970년


앞으로 앞으로 /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 다 만나고 오겠네

온 세상 어린이가 /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 달나라까지

앞으로 앞으로 / 앞으로 앞으로


이 노래는 <퐁당퐁당>, <옥수수 하모니카>, <달맞이> 등 내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동요의 아버지 윤석중 선생님이 만드셨어요. 어려 사정으로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서야 동요를 만난 것 같아요. 그 전에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어쩔 수 없이 딱따구리 만화의 주제곡? 학교에서 배운 동요는 하나하나 좋았죠. 더구나 리코더로 연주를 하기도 해서 손끝으로도 익히고 입에도 붙고요. 

너댓살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집이라는 공간을 거의 벗어나지 못한 나는 또래와 어울리는 법을 잘 몰랐어요. 인사만 잘하고 벙어리가 되는 아이였던 기억이 나요. 아이들이 모두 잘하는 것들을 나는 못했던 영향이 커요. 그때의 나는 상당히 내성적으로 보이는 아이였을 거예요. 자리에 앉으면 일어나 돌아다니는 법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활동성이 없는 식물처럼 자리에 딱 붙어 있다가 수업을 마쳐야 엉덩이를 뗐어요. 아, 딴소리. 

그만큼 몹시 준비가 되지 않은 나였기에, 학교 생활은 그 자체로 놀라운 모험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집에는 없지만 학교에는 오롯이 나의 것인 자리가 있었습니다. 책상 가운데에 똑부러지는 선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며 영역을 확실하게 정해주는 짝도 있고요. 등하교 하며 같은 길을 다니던 친구가 옷자락을 붙잡고 '같이 가자'며 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학교라는 세상을 배웠습니다. 마냥 따뜻하고 좋게만 느껴지던 순간입니다. 그런 공간에서 아이들과 배운 노래는 만화 주제곡들과는 달리 또 세상 위로와 위안을 주고 세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어린 나의 영혼을 따스하게 달래어주었던 많은 노래들이 있었죠.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하던 구슬비를 흥얼거리며 비오던 날에 학교 가던 장면은 제게 그림책 <노란우산>의 장면을 떠을게 하는 심상을 가졌습니다. 아, 이렇게 풀면 노래 이야기로만 가득 차겠네요. 여기서 자르고! 

그렇게 내 인생에 온 숱한 동요 중에 하나가 <앞으로>입니다. <앞으로>는 어린 나에게 '지금 네가 어렵더라도 환하게 웃으면서 앞으로 걸어나가 봐'라고 다정하게 격려했습니다. 아마도 이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때문이었겠지요? 형편이 어려웠거나, 마음이 어려웠거나 했던 누군가에게 윤석중 선생님은 그렇게 다정하게 위로를 건넸던 것일 터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에 나오는 '지구'라는 단어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어렸던 나는 '지구는 둥그니까 / 자꾸 걸어 나가면 / 온 세상 어린이를 / 다 만나고 오겠네.' 이 부분을 반복적으로 부르고는 했어요. 이 노래가 나오기 얼마 전에 인공위성 '아폴로'가 달에 착륙을 하며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고 주말의 명화로 이티를 보면서 우주를 상상하게 되던 때였어요. 그때 나에게는 몹시 사랑했던 이티 연습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지구와 우주가 들어왔던 때였기에, 정말 잘자리에 지구를 걸어서 한 바퀴 돌며 세계의 친구를 만나기 바빴습니다. 무엇보다 이 지구에 내가 만나야 할 어린이(그때는 친구)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가슴을 벅차게 했습니다. 그 노래를 입에 붙이고 흥얼거리는 동안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을 하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내 또래 누군가를 보며 나를 생각할까? 이런 것들을 궁금해 하고는 했습니다. 정말 <엄마 찾아 삼만리>처럼 나도 자꾸 걸어 나가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어린이의 생각들이 끝없는 상상력으로 펼쳐질 때, 입에서는 <앞으로>가 흘러나왔떤 것입니다. 윤석중 시인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시인은 아마도 우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으며 지구 마을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어린이들의 마음에 심어주었을 것입니다. '온 세상 어린이가 / 하하하하 웃으며 / 그 소리 들리겠네 / 달나라까지'라는 가사처럼 우리의 일이 전 세계에 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시대가 정말 도래했지 않나요? 그런 이유로 나의 마음 속에는 '앞으로 앞으로 / 앞으로 앞으로' 자꾸 걸어 나가야 하는 전진하겠다는 마음과 '온 세상 어린이를 / 다 만나고 오겠네'가 마음에 품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동요 한 구절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이런 작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앞으로 자꾸 걸어 나가서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78억 지구의 모든 어린이를 만나기 위해 앞으로의 전진을 해야겠구나. 


이런 마음으로 어린이책 편집자가 되었고 볼로냐에서 세계의 책을 만났고 책을 만들어 수출을 하거나 유튜브를 만들어서 한국이 아닌 지구의 어린이들과 이 책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걸 것입니다. 노래 하나가 전세계 닥방을 나에게 촉구하는 것처럼 느끼고 전세계 닥방을 구상하게 하는 일. 어쩌면 닥방은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해 나가야 하는 일이라는 결론에 슬그머니 도달해 봅니다. 그리고 어쩌면 닥방은 전 세계의 우리가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가며 서로 만나야 한다는 이 메시지처럼 우리가 계속 연결되어야 한다는 서사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에 지어진 노래가, 반세기 뒤에 나에게 이렇게 촉구할 수 있는 힘. 


앞으로 나아가라. 전세계에 달달북스를 알려라. 

아이들이 하하하 웃게 하라. 달나라까지 그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라. 


마음과 몸에 세겨진 이런 닥방 정신으로 오늘도 나는 아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실 부모님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이들과 함께할 '즐거운 수작'을 부리러 갑니다.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닥방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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