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다려야 하나요? _ 이달의 닥방사
세상 모든 일에는 선물이 있지요. 어떤 나쁜 일도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닥방의 '선물'에 대해 말해보려고 해요. 수십, 수백 회차의 닥방으로 '인사이트'를 얻었던 경험에 관해 말이에요.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친척집의 숫가락이 몇 개, 수저가 몇 개인지 세어 보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처럼 어떤 주제로 수회차의 닥방을 거듭하면 눈이 뜨이게 되는 대목이 있어요.
오늘 이야기는 필리핀 세부에서 교민신문 편집장으로 일하며 세부의 거의 모든 한인 가게에 광고 영업을 하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닥방을 한 때로 거슬러 갑니다.
해외 교민지라는게, 보통은 컨텐츠를 새롭게 기획하거나 만드는 저널의 기능은 약하고 해당 교민 사회의 광고지 역할이 더 큽니다. 보통 열흘에 한 번 간행되고 페이지도 36면을 넘지 않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에 취재 기사는 한인회 소식이 전부였어요. 그 외 교회 목사님이 쓰시는 시부아노를 배우는 꼭지가 전부인. 그러니까 나머지 판면의 40프로는 한국 신문 기사 복붙. 그리고 나머지 50프로는 광고. 그래서 편집자이자 광고 영업자이나 편집장이자 광고 디자이너이자. 그 모든 일을 혼자 다 해야 하는 자리.
그런데.... 편집기획사 대표 출신에 작가였던 내가 그 일을 주어진 그대로, 시키는 그대로 맡아 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취직하고 딱 한달째부터, 나만의 닥방을 설계해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러기 위해서 첫달 순보 3호까지를 간행하면서 기존의 광고주를 모두 방문했어요. 신문을 배달하던 현지 직원 라몬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직접 발행된 신문을 건네드리면서 명함을 전달했어요. 그리고 광고주는 아니지만, 신문을 진열해 주시는 업체도 모두 직접 방문해서 남은 신문 회수까지를 손수! 그리고 발행 부수 중에 버려지는 부수가 얼마인지를 확인했지요. 광고에 대한 만족도도 여쭙고요. 직접 찾아가 업체를 하나하나 만나 보니까, 이전에 신문사와 업체 간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모두 자신들의 이야기를 신문에 싣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작게는 10만원, 많게는 100만원까지 비용을 내고 신문 광고를 하고 계신 분들이었기에 모두 신문사에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었어요. 그럴만도 한 게, 신문사를 통해 업체 광고를 하고 있기도 했지만 광고로 신문사도 유지가 되는 그런 관계였더랍니다.
자, 닥방 설계는 끝났어요. 나의 선택은 광고 영업을 다니면서 취재를 하는 것이었어요. 아니 취재를 하면서 광고 영업을 했다고 해야 할 거예요. 흥미로운 사실은 취재를 다니고 업체들을 취재한 기사가 신문에 실리자, 한인 업체의 대표님들이 몹시 만족했다는 겁니다. 광고는 자연스럽게 늘었지요.
닥방을 거듭 다니면서 업체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더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이 식당, 미용실, 학원 들이었기 때문에 홍보 전단, 메뉴판, 회사 로고 등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었고 현지의 디자인업체와는 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에 쩔쩔 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는 방문할 때마다, 그런 필요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명함, 간판, 전단지, 메뉴판 등을 제작해드리면서 부가적인 수입을 발생시키거나 광고 사이즈를 업사이드 하시도록 세일즈를 했습니다.
내가 가장 주안을 두었던 사업은, 신문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부인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지만 정보를 충분히 채우고 있지 못한 업체와 제휴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교민신문의 여러 기사들은 이틀 차이로 세부인에 서비스를 하도록 연결해, 신문에 광고를 하신 분들의 정보를 인터넷으로도 서비스 받으실 수 있게 했지요.
그런 작업을 하다 보니, 나는 교민연합 뉴스가 세부 로컬 신문사 정도로 성장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현지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취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졸리비, 브레드톡, 보스, SM, 아얄라, BOD 등. 필리핀 로컬 브랜드와 정치인들을 인터뷰하고 호텔들, 건설사들 그리고 세부 미인대회 수상자, 라디오 DJ까지. 세부 로컬 기업들은 나의 작업을 흥미롭게 보아주었어요.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기업을 알릴 좋은 기회가 되니까요. 그래서 교민지에 로컬 기업들이 광고를 싣기 시작했지요.
안타깝게도 도서관 운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더는 편집장직을 맡아서 할 수가 없었어요. 업무량이 어마어마했거든요. 그래서 편집장직을 콩세알 도서관 운영을 위해, 일을 그만두면서 해당 신문사에 그러한 꼭지와 변화는 멈춰버렸겠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내가 오늘 하려던 닥방으로 인한 인사이트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이런 일에 관한 게 아닙니다. 물론 닥방을 거듭하며, 영업의 전략과 마케팅의 방식이 바뀌었고 회사의 비전도 바뀌어 갔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드리려던 것은요. 닥방을 거듭하며 얻은 인사이트에 관한 것입니다.
세부라는 제한된 지역의 특성을 바탕으로, 닥방을 거듭하면서 업체들의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1년쯤이 되었을 때, 나는 빠꼼이가 되어있었어요. 그래서 업체를 들어가면 이 업체가 하루에 얼마나 매출을 하는지, 업체의 손님이 주로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현금 흐름이 좋은지, 광고를 몇 달이나 할 것인지, 얼마 정도면 광고를 수락할 것인지, 어떤 서비스를 제안하면 좋을지를 단번에 파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고비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신문사의 경우, 광고주가 광고비를 외상으로 할 경우의 리스크를 해결해야 하는데, 업체 대표님의 몸짓과 표정, 말투만으로도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었지요.
왜냐하면 나는 잘 듣는 사람이었거든요. 열심히 보고요. 그래서 대표님들의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열심히 귀담아 들었어요. 그리고 신문사 일을 하러도 갔지만 해당 업체들에서 밥을 먹고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마사지를 받고 사랑니를 뽑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 깊어져 있었어요. 그러니 업체를 정리하고 떠나시기 전에 '아름다운 이별'과 '아름다운 정리'를 하실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었지요. 딱 한 곳! 갑자기 사라진 광고주만 빼고요!
나는 세부에서 돌아온 뒤에도, 1년이면 한번씩 세부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닥방을 수없이 했던 업체들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밥을 먹고 마사지를 받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코로나로 많은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셨고 한국에서 뵙기도 하지요, 여전히.
닥방은, 물건을 팔거나 하는 관계를 때로는 평생의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빠꼼이가 됩니다. 나는 빠꼼이가 된, 내가 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의 사정을 잘 안다는 것은 친절해질 수 있는 좋은 요건이 되어주거든요. 친절은 언제나 옳잖아요? 닥방의 선물은 다음 화에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