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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 Jan 20. 2022

무엇보다 나

우리들의 자원을 잘 활용하는 법 03

"제가요?"라고 당황하여 묻던 사람. 나도 그랬습니다. 2012년에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이 출간되기 전에도 사실 나는 작가로 활동을 했습니다. 출판기획사를 내면서 여기저기에 살자고 던진 기획서들은 대부분 내가 썼던 것들이겠지요? 보통 기획서에는 샘플 원고가 달라붙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샘플 원고로 작가님들에게 원고를 받지만 다시 써야 하거나, 펑크를 내면 급하게 편집자인 내가 투입이 되어 원고를 쓰던 때도 많았습니다. 아예, '이비단'이라는 필명을 달고 집필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단구두라는 기획사가 우여곡절 끝에 문을 닫은 뒤에, 프리랜서 기획자,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면서도 상당히 많은 원고들의 집필을 했습니다. 그렇게 나를 스쳐간 책이 백여 권이 되는데도,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등단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요. 내 주변에는 모두 등단한 작가님들뿐이었고 등단을 하지 못하면 구성 작가라느니, 삼성출판사 같은 그런 애들 책이나 쓰는 기획자라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내게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2003년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의 일입니다. 그때 나는 크리스마스에 친구(모두 2002년 12월에 인도에서 만난)들을 만나기 위해 런던에 가 있었습니다. 러브엑추얼리 영화가 개봉해 모든 광고판을 도배하고 있고 거리 곳곳에서는 러브엑추얼리 주제곡이 퍼질 때였지요. 그때 나는 런던에 살고 있었던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이웃들의 집에서 하룻밤씩을 묵는 이상한 여행을 했었는데요. 그런 밤들 중에 하루였습니다. 부부는 70세가 넘었고 남편은 은퇴한 회계사로 홈오피스를 내어서 지인들의 회계 업무를 봐주고 있었고 아내는 전세계를 여행하며 접시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에게는 마흔 중반의 아들이 있었고 나는 그의 친구의 손님이었지요. 성이 Dear였던 게 기억이 납니다. 디어 부인은 자신의 접시가 가득한 방으로 안내하고 그 접시들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우리는 그 방의 가운데 놓인 푹신한 소파에 앉아 그 이야기를 한참 들었지요. 어느 여행지에서 무슨 읽을 겪었고 그 여행지의 어떤 시장에서 이 접시를 만났는데, 이 접시에 이 무늬를 보고 단번에 반해서. 그 이야기로 밤을 지샐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 디어 씨가 디어 부인에게 새로운 차를 내오라고 하고 나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해서 나 또한 한참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내 나이는 27살에서 28살로 바뀌는 중이었어요. 내가 하루 그 집에 머물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디어 씨는 한국에 대해 한동안 신문 기사 등을 수집해서 노무현 대통령, 한국의 문화에 관한 책 등을 구입해서 미리 읽어 놓으셨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거침 없이 내가 아는 얄팍한 지식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 간단한 대화, 한국에서 중요한 것들도 말씀 드렸지요. 

그러다 이야기는 "작가라며?"라고 디어 씨가 물었는데. 그때 내가 딱 그랬습니다. 

"아, 아니요! 글을 쓰기도 하지만 그냥 편집자예요." 

"아, 글을 안 써요?"

"아, 글을 쓰지요. 하지만 작가는 아니고 편집자예요."

"그래요? 글을 쓰는데, 작가는 아니에요? 그럼 어떤 글을 쓰는데요?"

이런 대화가 너무도 낯이 설었습니다. 디어 씨는 내가 작가라고 생각했다며 디어 씨의 동네에 다른 작가가 최근에 낸 책을 선물로 주고 싶다며 내밀었어요. <Mogi Joe is coming> 아직도 그 손바닥 만한 책의 제목과 표지를 잊지 못해요. 

"아이 때부터 알던 아이인데, 늘 글을 쓰더니, 이렇게 책을 냈지 뭡니까."

그 책은 대략, 마을의 작은 출판사에서 낸 책이었고 지금으로 보면 독립출판의 형태로 출간된 책이었어요. 하지만 디어 씨에 말에 따르면 자신의 동네에서 가장 핫한 작가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덧붙였어요. 

"런던에서 편집자로 일해요." 

나는 그 말이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한동안 나는 변명하듯이 설명을 했어요. 한국에서는 등단을 해야 작가라고 한다. 글을 쓰고 있다고 스스로를 작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문단의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디어 씨는 한 마디를 덧붙였어요. 

"쓰면 작가지. 리(당시 내가 쓰던 외국 이름)는 아무래도 스스로가 작가인 걸 믿지 못해서 인정을 바라는 사람인가 보군요." 


이 구구한 이야기. 여러분도 경험한 적 있지 않나요? 이렇게 뼈 때리는 충고를 듣고도 나는 이 말의 다른 표현 "스스로 작가인 걸 믿고 작가로 살라"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한 것은 20년의 세월이 훌쩍 넘어서예요. 2012년에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을 쓰고 작가라고 불리는 걸 낯설어서 어쩔 줄 모르던 때가 있었고 무엇보다 여권에 에디터가 아니라 작가라고 쓰기 시작한 게, 2020년 2월 세부 입국 때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정식으로 단행본이 한권 출간이 되었지만, 등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작가라고 믿지 못한 나는 늘 내가 쓴 글을 의심하고 내가 하는 말을 의심하고 내가 하는 행동을 의심했어요. 그래서 누가 좋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누가 옳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누가 잘했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렸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사는 동안 늘 쓰고 쓸 것을 고민하고 책을 만들 것을 고민하고 늘 책으로 소통하는 삶을 살아왔으며 전집만 수백 권을 기획하고 수십 권의 위인전을 직접 쓰고 리라이팅을 하고 구성원고를 쓰고 대필을 해오며 마침내는 내 이름으로 단행본 책을 내기도 한 내가, 스스로를 작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모두가 나를 작가로 인정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훌륭한 작가는 아닙니다. 

나는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럴만하지 못합니다. 


이건, 정말 옳을까요? 내가 그런 상태이면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능성을 믿으라고 너 스스로를 사랑해야 다른 사랑할 수 있다고. 너 스스로에 친절해야 다른 사람에게 친절할 수 있다고. 모든 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내 행동을 사랑하고 내가 나를 인정할 때, 외부의 것들의 의미가 있다는 걸 말할 수 있을까요? 


나의 책 <너의 특별한 점>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린 모두는 숨쉬고 꿈꾸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내가 나의 특별한 점을 보아야 해요. 내가 가졌지만, 내가 가볍게 여긴다면...... 나의 자원들을 빛날 기회가 없습니다. 아닌가요? 


여러분 쓰면 작가입니다. 잘 쓰고 못 쓰고 사랑받고 못 받고는 다음 문제예요. 내가 시를 쓰면 시인이고, 내가 소설을 쓰면 소설가이고 내가 동화를 쓰면 동화작가인 것입니다. 누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나는 끝내 쓰는 삶을 살 것이니까요. 그리고 시 다음 소설 다음 희곡 다음 에세이. 이런 등급은 없어요. 어떤 그림책은 어떤 소설에 뒤지지 않고 어떤 시는 짧은 에세이만큼도 완성도가 없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걸까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나는 당당하게 나를 '작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달달북스의 '대표'이고 또 아이 셋의 엄마이고 이 사회의 소중한 구성이고 무엇보다 나는 '이달'입니다. 누구보다 나는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려고 해요. 여러분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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