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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 Jan 21. 2022

최고의 선물로 돌아오게 될 거야

우리들의 자원을 잘 활용하는 법 04

<나의 아기 오리에게> 글 _ 코비 야마다, 그림 _ 찰스 산토소, 번역 김여진, 상상의힘


너그러워지길. 

네가 나누었던 것들이 최고의 선물로 되돌아오게 될 거야. 


상상의힘 출판사에서 최근 출간된 코비 야마다 작가의 <나의 아기 오리에게>의 문장이에요. 지난밤 신간 그림책을 줌으로 함께 보고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꿀시사회'에서 번역가 김여진 선생님의 소개로 만나봤습니다. 워낙 코비 야마다 작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코비 야마다의 전작 <아마도 너라면>을 좋아했기 때문에 기대가 있었는데, 만나보니 더 반하는 책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 '너그러워지길. 네가 나누었던 것들이 최고의 선물로 되돌아오게 될 거야.' 오늘은 이 문장에 대해 나눠 보려고 해요. 어떤 맥락으로 '당신이 가진, 당신이 가볍게 여긴' 혹은 '우리의 자원에 대해'와 이 문장이 만날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의 시작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중학교가 의무 교육은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에 내야 할 비용들이 소소히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학교에 내야 할 소소한 비용을 제 때에 내기 어려운 학생이었습니다. 

다만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제법 해 한 복지가로부터 장학금을 받았고 아버지가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시면서 나라에서도 지원금이 나와서 '학교에서 내야 할 소소한 비용'을 제 때 낼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나는 불편하였습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남에게 쉽게 손을 내밀거나 하지 않았던 어머니 덕분이기도 했고 없으면 굶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뭔가를 받으면 꼭 갚아야 한다는 마음, 나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등으로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장학금을 받던 날에, 선생님께 여쭈었습니다. 꼭 벌어서 갚고 싶다. 연락처를 알고 싶다. 감사한 편지라도 쓰고 싶다. 그 업무를 담당하셨던 박란정 선생님은 나에게 여러 가지 다른 기획도 많이 주셨던 분인데, 그때 알아보겠노라 하시고 며칠 뒤엔가 이런 답을 주셨어요. 


잘 받아서 뜻있게 살고 어른이 되어서 다른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갚아라.


어린 마음에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빚을 지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작은 것이라도 '갚으며 사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본격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게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진 돈을 나누거나, 헌금을 많이 하거나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고는 하였습니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나의 시간과 나의 마음과 나의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도움을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도움을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시간과 나의 마음과 나의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들에 관해, 비교적 진심을 다하는 편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없는 일도 만들어 가며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삶의 태도는, '바쁜 현대 직장인'과 과도한 '성취욕'을 가진 20대에는 나의 일과 나의 성공에 뒤로 미루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창업한 회사가 어려워지고 목숨과 바꾼 생명보험금으로 빚을 청산하려던 어느 날에 목숨을 잃을 뻔 한 뒤, 나의 한계상황 터닝포인트에서 문득 나의 오래된 채무의 문장이 내게 돌아왔습니다. 


잘 받아서 뜻있게 살고 어른이 되어서 다른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갚아라. 


삼십대 중반에, 이 문장을 다시 가슴에 품었고 이 때는 나의 경제력과 나의 마음과 나의 몸과 나의 시간을 써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도서관을 운영했고 활동가로 지방을 뛰어다니며 수업을 했고 최근에는 출판사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든다며 출판사 업무도 뒤로 미루며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엄청나게 봉사하는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나는 이 모든 나의 '오지랖' 넓은 일들에 대해 댓가를 바란 적은 없습니다. 그냥 그 일을 통해 세상이 진 빚을 갚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그 빚이요. 줄지를 않았습니다. 갚아도 갚아도 더 큰 사랑과 도움이 나에게 왔거든요. 도서관을 한다고 했더니, 임정진 작가님과 디자인아이 신은경 대표님, 봄볕 권은수 대표님, 나는별 김수현 대표님 등 수 없이 많은 출판사와 독자님들이 페이스북의 내 피드를 보고 책을 보내주셨고요. 다시 잔뜩 받아버렸습니다. 도서관에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하니까, 봉사자들이 나타났고 책을 한국에서 실어와 준 업체가 나타났고 더 넓은 공간을 빌려주는 사람이 나타났고요. 

대부분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홍성에 내려가 아이들을 만났는데, 그 아이들 중에 한 친구, 예윤이가 나의 무릎을 안고 "작가님, 책 언제 나와요?"라고 물어온 일이 내가 책을 다시 쓰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출판사를 내었을 때, 그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을 사주어서, 그동안 함께 숨을 나누었던 벗들이 책을 사주어서 첫달부터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꿀시사회도 그렇게 시작됐어요. 시작은 내가 출판사들과 작가님들과 독자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를 통해, 모두가 즐겁자는 거였는데요. 어느 순간에 많은 분들이 그 일에 관심을 쏟아주시고 마음을 보내주셨습니다. 

솔직히 내가 쓴 시간에 비해, 너무 많은 것들이 선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두려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받지 않고 싶은 마음에 사양을 하기도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거절하고 사양하고 거절하고 사양하고. 그렇게 나의 입에는 거절과 사양이 붙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에 또 한 선생님이 다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정히 받고 더 크게 나누세요. 선물은 받는 거예요. 


그렇게 다시 받아보았습니다. 넙죽넙죽. 그런데 여기에 마법이 있었습니다. 어떤 균형감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많은 분들로부터 받은 것들을 갚는 심정이었다면, 그래서 과도했다면, 지금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모두 기쁩니다. 그리고 이 주고 받고 다시 주는 일의 과정이 수없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나는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 그것이 선물이었습니다. 그것이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너그러워지길. 

네가 나누었던 것들이 최고의 선물로 되돌아오게 될 거야. 


여러분 너그러워지길요. 다른 사람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요. 받아도 좋아요. 나누어도 좋고요. 잘 받고 잘 나누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에, 최고의 선물이 있어요.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우리의 자산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주는 일에 힘쓰는 만큼 잘 받는 일에 힘쓸 필요가 있어요. 그것 또한 우리의 자원이고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내가 가진 것들이랍니다. 주는 일을 할 때의 당신의 삶의 순간들과 받는 일을 할 때의 당신의 삶의 순간들이 모두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지요.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소중한 자원이라는 것. 


이제 우리 이 일을 '오지랖'이라고 부르지 말기로 해요. '기대'하지 않았느데 주어진 선물들에 기뻐하는 우리가 되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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