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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령아 Jan 12. 2020

7년간의 사랑

역시 사랑은 타이밍인가

요즘 내 플레이리스트는 80-90년대 가요가 차지하고 있는데, 며칠 전 차를 운전하고 가는 길에 오랜만에 화이트의 [7년간의 사랑]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푸른하늘부터 화이트까지 이어지는 유영석 씨의 노래들이 줄줄이 흘러나오고 있던 터라 ‘야.. 진짜 오랜만이다...’ 하면서 듣고 있었는데, 이 [7년간의 사랑] 노래 가사가 새삼스럽게 참 쓸쓸하다 싶더라 (예전에는 ‘뭐야 가사가 왜 이렇게 질척거려..’라고 생각했는데). 이 가사는 참 서사적이라서 노래 전체가 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원래 가사가 좋은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고, 가사에 이야기가 있는 노래들을 좋아해서 (그래서 옛날 노래들을 좋아함) 당시로는 국민학교 때 신승훈 팬클럽에 가입하기도 하며 남들이 H.O.T를 외칠 때에도 꿋꿋하게 ‘나는 비주류의 길을 가겠노라며’ 늙은이 같이(?) 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파란색은 노래 가사)


7년을 만났죠 아무도 우리가 이렇게 쉽게 이별할 줄은 몰랐죠
그래도 우리는 헤어져버렸죠 긴 시간 쌓아왔던 기억을 남긴 채

우린 어쩜 너무 어린 나이에 서로를 만나게 됐는지 몰라
변해가는 우리 모습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는지도
이별하면 아프다고 하던데 그런 것도 느낄 수가 없었죠
그저 그냥 그런가 봐 하며 담담했는데
울었죠 (우우우) 시간이 가면서 내게 준
아쉬움에 그리움에 내 뜻과는 다른 나의 맘을 보면서
처음엔 친구로 다음에는 연인 사이로
헤어지면 가까스로 친구사이라는 그 말 정말 맞는데

그 후로 3년을 보내는 동안에도 가끔씩 서로에게 연락을 했었죠


노래 가사는 헤어짐으로부터 시작된다. (첫 가사인 “7년을 만났죠”가 “치한을 만났죠”처럼 들려서 당시 그걸로 웃기도 했는데 사실은 참 슬픈 이야기이다.) 화자와 그의 연인은 7년 동안 만났고 쉽고 담담하게 헤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헤어진 것을 후회하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뭐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이런 경험은 없지만 (제일 오래 만난 남자 친구는 몇 번의 헤어짐을 거쳐 지금 남편이 되어있기 때문에) 왠지 이 마음이 어떤 건지는 알 것 같달까. 물론 그렇지 않다면 제일 좋겠지만 사람이 너무 오래 함께 하다 보면 편하고 당연해서 좋아하는 마음도 흐려져서 잘 안 보이게 되고, 그 소중함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으니. 그래서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도 그들은 3년 동안 간간히 서로에게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 아이고...


다른 한 사람을 만나 또다시 사랑하게 되었으면서도 난
슬플 때면 항상 전활 걸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너도 좋은 사람 만나야 된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아직 나를 좋아하나 괜히 돌려 말했죠
알아요 (우우우) 서로 가장 순수했었던
그때 그런 사랑 다시 할 수 없다는 걸 추억으로 남을 뿐
가끔씩 차가운 그 애 느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죠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도 전 연인이 종종 생각나고 힘들면 전화 걸어서 울고 쓸데없는 소리 하고... 아이고... 이 정도의 마음이면(?) 우리 다시 만나보자 나 아직 너 좋아한다 뭐 그렇게 다시 시작할 법도 한데, 이 노래의 두 사람은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다시 만나보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분명 다시 시작해볼 타이밍은 여러 번이었을 텐데 서로 숨기고 아닌척하고 괜찮은 척하면서 그렇게 기회들을 흘려보냈던 것 같다.


나 이제 결혼해 그 애의 말 듣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죠
그리고 울었죠 그 애 마지막 말
사랑해 듣고 싶던 그 한마디 때문에


아이고... 노래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타이밍을 놓치고 놓치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자신의 연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되어,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묵히고 묵혀왔던(?) 마음을 고백하고 (어쩌면 털어버리려고) 가사의 화자는 그 말을 듣고 운다.


애써 추억이라 넘겨보려던 두 사람의 마음은 그동안 어쩌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시작하면 예전에 좋았던 기억까지 나빠질지도 몰라, 각자 다른 연인 만나고 있는데 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괜히 다시 만나보자고 했다가 지금처럼 이렇게 가끔 연락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해, 뭐 기타 등등. 아주 그냥 미련이 서로 철철 넘쳐흐르면서도 애써 아니라고 괜찮다고 넘기며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낸 거겠지.


관계라는 게 참 그런 것 같다. 연인이든 친구든 뭐 그런 걸 떠나서 모든 관계들이 다 마음이 있다고 잘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늘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을 숨길 때도 많고, 그렇게 숨기고 있다가 더 안 좋은 관계가 되기도 하고... 결국 그 모든 것은 다 타이밍이 아닐까 싶었달까. 아니 노래 하나 가지고 뭐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나 싶긴 한데, 원래 생각이 많은 사람이니 꽂힌 노래에 이 정도 생각은 기본 아니겠는가.


이 비슷한 노래로는 김동률 씨의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것이 있다. 이 노래의 연인도 역시 7년을 만났고, 담담하고 조용히 아무렇지 않게 헤어진다. 처음에는 편하고 자유롭게 둘이라서 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혼자서 하며 보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은 영화를 볼 때나 멋진 노래를 들을 때 전 연인이 생각나서 연락을 할 뻔하기도 하고, 어느 날 집에 돌아왔을 때 마음이 시려서 울기도 하면서 지난 시간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고 이 노래 화자는 "아무래도 나는 너여야 하는가 봐"라고 말하며 똑같이 다투고 울고 속이 상해도 그냥 다시 시작해보자고 말한다. 분명 같은 상황인데 결과가 다르다.


세상에 처음부터 잘 맞고, 잘 맞지 않는 관계가 과연 있을까 싶다. 그냥 원래부터 타인과는 잘 맞을 수 없지 않을까. 나와 꼭 같은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그래서 모든 관계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로가 그럴 마음이 있어 그 노력을 유지한다면 그 인연은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서로가 그럴 마음이 (함께) 있기가 어려운 거겠지만.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써놓고 보니 별거 아닌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노래 하나 가지고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니, 나도 참 나다. (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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