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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령아 Jan 18. 2020

별나도 괜찮아

결국 우리는 모두 다 별난 사람들

요즘은 사람 만나는 것이 지치고 싫어서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핸드폰도 멀리하고 책이나 논문이나 글을 읽거나 아니면 넷플릭스를 보면서 지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가만히 누워있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보다는 매체를 통해 얻는 생각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최근에는 Netflix로 '별나도 괜찮아'라는 미드를 보았다. (역시 사진은 하나도 없고 드라마의 내용이 글에 다소 포함될 수는 있을 것 같음) 시즌 3까지 나와있고 시즌 1은 8화, 시즌 2와 3는 각각 10화까지 있는 꽤 긴 드라마였는데 (아마 앞으로도 시즌이 계속되지 않을까) 보면서 참 기분이 좋고 만족스러웠다.


이 드라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샘이라는 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샘과 그 가족 (아빠, 엄마, 동생인 케이시), 그리고 주변 친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꽤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일단 좋았고, 그 안에서 모든 캐릭터들이 소외되지 않고 살아있어서 더 좋았다. 드라마는 단지 샘의 장애와 그의 삶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가족들의 삶은 어떤지, 주변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샘은 일반적이지는 않다. '일반적'이라는 표현이 참 모호하긴 하나, 흔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말하는 '일반'과는 좀 다르다. 이상 행동과 정신 장애들을 모두 묶어서 우리는 '이상' 심리학이라고 부르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역시 이상심리학에 포함되어있다. 학문적인 기준으로 혹은 사회적인 기준으로 볼 때 샘은 분명 다르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샘이 장애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과연 정말 샘만 별난 걸까? 내가 보기엔 그 드라마에서 엄마가 제일 이상해 보이던데? 케이시의 남자 친구인 에반도, 샘의 여자 친구인 페이지도, 또 샘의 절친인 자히드도, 심지어 샘의 카운슬러인 (아마도 정신과 의사인 듯) 줄리아마저도 결코 '일반적'이지는 않다. 단지 '장애' 판정을 받지 않았을 뿐 내가 보기엔 그들도 역시 '별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나에게도 샘과 같은 면이 분명 많이 존재한다. 나는 샘처럼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가거나, 계획이 틀어졌다고 혼란스러워하고 괴로워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말을 가감 없이 아무 때나 하지는 않지만, 샘과 마찬가지로 시끄럽고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 가는 것이 불편하고, 솔직하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려고 매 순간 애쓰고, 관심 분야가 명확하고 (그래서 그것만 하고 싶어 하고), 계획을 좋아하며, 가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들을 이해 못하겠다고 생각하거나 답답하게 느낄 때도 많다.


나에게는 그 드라마가 단순히 샘이 자폐를 가지고 있어서 별나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달라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이 보였다. 샘은 다른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그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한 사람일 뿐이고, 주변의 사람들도 샘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물론 드라마에 나오는 샘은 적응적이기도 (혹은 기능적이기도) 하고, 사회적 기술도 꽤 많이 습득해서 사용하고 있다. 모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샘만큼 하기 위해 샘을 비롯한 그 가족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했을지 상상하기 어렵기도 하다. 혹자는 요즘 인기 많은 캐릭터인 펭수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동과 유사하다고 말하기도 하던데, 샘을 보면서, 그리고 펭수의 인기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솔직할 수 없는지, 명확하고 분명하지 않은 것이 많은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융통성' 혹은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숨기고 지내야 하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되어 씁쓸하기도 했다.


샘은 명확하고 분명하다. 정해놓은 규칙이나 약속을 어기는 법도 없고, 꿍꿍이(의도)를 가지고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지도 않고 항상 솔직하다.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에게 집중되어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하지만, 누군가가 설명해준다면 그 마음을 깊게 공감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줘야 도울 수 있는지를 묻기도 한다.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해서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집중하고 관찰하고 세심하게 생각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동들을 조절하기 어려워하지만,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펭귄 종류를 말하는 것). 이렇게 쭉 나열해놓고 보면, '장애' 판정을 받지 않았지만 샘보다 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많지 않은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샘의 성장을 보면서 과연 누가 별난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살아본 인생이 최고라고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듣지도 않는 소위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이나, 자기가 생각했을 때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혹은 사회적인 무언가가 없다고 생각되면 막말을 하거나 막 대하는 소위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기분이 상했다고 아무데서나 소리를 지르고 그 기분 나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나, 뭐 그런 기타 등등... 그들은 장애 판정을 받지도 않고, '일반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사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샘에게 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별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냥 우리 모두가 다 다른데, 좀 다르다고 생각하고 보면 안 되는 것일까. 만약 샘이 별나다고(atypical) 한다면, 우리도 모두 그렇겠지.


참 마음에 드는, 따뜻한 드라마였다.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살아있고, 무엇보다 샘이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며, 케이시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앞으로도 시즌이 계속 이어져서 오랫동안 샘의 성장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시리즈물을 보고 있는데, 성폭력 사건 관련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라 보면서도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샘의 귀여움이 그립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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