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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22. 2023

퇴사 후 일 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다.

아 취직하기 싫다고요



퇴사 후 딱 일 년이 되는 날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아, 어쩜 시기적절하게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자가격리하며 일주일 푹 쉬고 일 년 일주일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은 에어비앤비를 체크인하기 좋은 상태로 정비하는 일이다.

이전에 경험이 있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지만,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날짜, 원하는 업무를 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카페를 제외하고면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어서 시간 쓰임과 조율이 자유롭고 근무시간이 짧은, 대신에 시급으로 치면 최저임금보다는 높은 일.

많~이 일하고, 적당히 버는 것보다 적게 일하고 적당히보다는 조금 버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말이 좋아 ‘정비‘이지 실제로 가서 하는 일은 ’청소‘와 다름없어서 처음엔 상당히 고민을 했으나

최소 1시간 30분. 최대 4시간만 하면 되는 일.


사실 백수로 1년을 살면서 딱히 무슨 계획이 구체적으로 세워진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회사에 취직한다고 하면 나에게 무의미한 일, 재미있지도 않은 일을 다시 하게 될 터였다.


나의 반려인은 더 이상 내가 회사에서 소모품으로 일하지 않고 창의적인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아직 무언가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다려주는 응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무엇이든 기록하다 보면 닿는 곳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아르바이트 주간일지를 적어보기로 했다.


“그럴 거면 취직하는 게 낫지 않아?‘라고 묻는 엄마에게,

사무직으로 일하며 오른쪽어깨도, 허리도 다 고장 난 내가 마우스를 다시 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 대답했다.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패드 화면을 ‘터치’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과, 노트북으로 ‘터치패드’를 만질 수 있는 정도.

내 몸 간격 밖으로 팔이 뻗어나가면 금세 허리와 어깨에 통증이 와 두통까지 연결되었다.

운동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PT나 1:1 필라테스를 턱턱 끊을 수는 없었다.

어릴 적부터 아끼고 아꼈던 버릇은 내 몸이 아파도 선뜻 돈을 쓸 수 없게 만들어 슬프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어로 된 닉네임을 쓰게 되었다.

한창 여름에 빠져있던 시기라 이름도 간단히 ‘summer'로 정했다.

영화 ‘500일의 썸머’의 주인공과 내가 비교가 될 것 같았지만 놀림을 당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나이가 먹은 게 좋을 때가 다 있다.

정작 이름을 지은 나도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썸머야, 써머야, 하고 불리는 게 내 본명으로 불리는 것보다 익숙하고 좋다.




힘들고, 금방 현타가 올 것이라 생각했던 ‘정비’라는 일은

힘들기는 해도 집안일보다는 쉽고, 소소한 재미가 있는 일이었다.

아직 아르바이트 3주 차라 인테리어 구경하는 맛도 있고.



출근해서 다녀간 여행객들의 뒷정리를 할 때마다 내가 묵는 숙소에서는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나와야지. 다짐하게 된다.

나도 반려인도 흔적을 흩뿌리는 건 좋아하는 성정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나오기는 하지만.

외국에 가는 날에는 한국의 무언가를 남기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의 소소한 재미는 여기서 온다. 내가 머무른 곳을 정리해 주는 누군가에게도 이런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날까지는 꾸준히 적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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