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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네오 Aug 27. 2021

울 엄마보단 나아야지!

울 엄마를 통해 살펴보는 내 엄마살이에 대한 고찰



어릴 적 도마에 부딪히는 칼 소리와 뭉근하게 끓는 국 냄새를 듣고 맡으며 눈도 뜨지 않고 일어나 앉아, 들어가지도 않는 밥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면서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엄마 참 고단하겠다.


아니 새빨간 거짓말이다.

엄마의 옛  '고단'을 안쓰러워하는 건 나이 마흔이 넘어 이제야 철들락 말락 하는 지금이고 그때는... '좀 맛있는 거나 해놓고 깨우지...' 했던 딱 철없는 딸년이었지... 잘 세탁도 않은 단추 떨어진 교복을 주워 입고 점심 도시락을 가방에 쑤셔 넣고 학교를 가면서 종종 두 가지의 감정이 동시에 일었던 듯하다. 이거 보단 예쁘고 정갈한 도시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엄마처럼 고단한 삶은 나는 못하겠다는 생각... 그래서 딸년들은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을 끼고 사는 것 같다.

엄마처럼 안 살아야지...


나는 엄마보단 나아야지...


작년 아니 재작년까지 대여섯 시에 깨어 애들 아침밥 챙겨놓고 아이들과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나오는 출근길에 종종 어릴 적  울 엄마를 떠올렸다.

새벽에 일어나 도! 시! 락! 까지 싸야 했던 울 엄마가 '얼마나 고단했을까?' 울 엄마가 이 글을 본다면 '철든 내 새끼'라 칭찬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동터오는 새벽녘에 혼자 일어나 밥을 짓고, 내 몸치장하고 출근을 준비하는 그 서글프고 외로운 시간에 떠 올린 건 '고단'했던 엄마의 엄마살이에 대한 애잔함이라기 보단 (도시락까지는 싸지 않아도 되는) 내 삶이 엄마보단 낫다는 알량한 위로였던듯 싶기도 하다.



그래 나아졌지...

엄마보다 정갈한 아침상을 차려내고, 엄마보다 덜 고단한 직장을 다니며, 내가 못 했던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채워 나가는 내 엄마살이가 엄마의 그것보다 낫기에 그것이 나를 위로하고 동시에 엄마를 위로하고 있다고 믿었다.


아침밥 차리는 삶의 고단함을 정성껏 담은 오트밀채소죽


아이들의 방학과 내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빈둥거리다 다 함께 늦어지던 취침 시간을 두 시간  이상 확 당기고 다시 아침 이른 시간에 원격수업해야 하는 두 아이들의 아침밥, 점심밥, 간식을 챙기며 시작하는 일상을 정상화시킨다.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 삐걱대는 내 몸은 다행히도 진한 카페인으로 달래 진다. 공복 카페인이 불가능한 시점이 오면 이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뭐 미리 걱정을 당겨서 하랴... 그러다 문득 또 똑같이 고단했을 엄마가 생각난다.

이제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야 하는 내 삶은 엄마의 어떤 고단함으로 위로를 해야 하나? 쥐어짜 끌어내면 당연히 넘치도록 있겠으나 문득  부질없고 서러워진다.


나아진 게 맞나?


아침 점심 간식... 엄마없이 챙겨먹을 아이들의 하루끼니


현관문을 닫고 출근길 나서며 오늘도 똥강아지들 하루 잘 보내라 기도하듯 인사하고는 나오는 걸음에 또 엄마 생각이 스친다.  울 엄마는 적어도 일터엘 나가도 우리 생활 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곳에서 일하려고 직종을 바꿔가며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집에 있으면 줌 수업 고작 두 시간 동안 열 번도 더 엄마를 찾아 "엄마 인터넷 안돼, 화면이 멈췄어, 지우개 갖다 줘, 목말라 물, 가지 말고 옆에 있어줘" 해댔을 아기 같은 녀석을 반경 30km 이상 떨어뜨려놓고 니들이 알아서 해내야지 하고 있는 내가 울 엄마의 엄마살이 보다 나은 게 없구나 하는 깨달음이 스친다.


나아진 게 없다.


식세기에 그릇을 세척하고, 건조기가 빨래를 말리고, 로봇청소기와 무선청소기가 청소를 돕고,  4대 보험과 연금이 보장되는 직장을 가진, 그러한 여유로 아이들을 오박사의 방식으로 양육하고  정갈한 음식을 먹이고 시시때때로 내가 어릴 적 해 본 적 없는 혜택을 누리게 하고 있다 믿었던 내 엄마살이도 울 엄마의 엄마살이 보다 나아지는 게 없는 것 같다. 슬프지만 그렇다. 엄마의 고단함을 가로 얻은 줄 알았던 '엄마보다 나은 삶'을 누리는 것에 감사하는 루틴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엄마만큼 살아내기가 힘든 거였구나...


부족하다 싶었던 내 속의 엄마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고 조용히 말해본다. '그만큼 해내기가 얼마나 힘든 건지 이제는 알겠어요. 나는 엄마처럼 해 내진 못하겠어요. '

괜찮다. 이 생각 또한 나름의 위로가 되니...

이제 그만 정갈한 도시락 따위는 포기하고 엄마가 엄마처럼 사는게 가장 현명했다는 걸 인정하며 내 현명한 엄마살이를 궁리해야겠다.


내일쯤은 아이들에게 선언해야겠다.


엄마 출근하는 날 아침은 시리얼이다. 그게 국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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