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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네오 Sep 02. 2021

'모름' 으로 하는 위로

장겨울 선생의 비밀



지난주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10편을 보시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는 패스 하심이 좋음을 알린다. 이런 걸 이 동네 전문용어로 '스포 있음'이라고 하던데...



엄마가 아프다는 장겨울 선생의 가족 사정이 처음 나왔을 때 다들 궁금했을 것이다. 많이 다친듯한 엄마의 증상과 이유를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장겨울 선생의 간절함에 대충 짐작이 가기도 했지만, 섣부른 예측은 드라마의 감동을 상쇄시킨다. 그래서 그저 궁금했다. 언제쯤 얘기해 주려나?


꼬아놓은 스토리를 한 발 앞서 풀어버리는 눈치 빠른 시청자들을 위해 신박한 반전을 또 준비해 내는 놀라운 방송국분들이 아니신가? 드라마의 구성도 시청자의 예측력도 그 능력치가 날로 날로 성장하고 있으니 참 별게 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다!



장겨울선생 엄마는 왜 다친 걸까?


8회쯤이었나? 앉아서 생각 없이 남편에게 물었다. 질문이라기 보단 그냥 중얼거림이었는데 평소에는 남에 일 특히 인간관계의 심오함 같은 거엔 하~~나도 관심 없고, 눈치도 없고, 공감능력도 꽝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남편(물론 나의 오해일 수 있다)이 뭘 물어보냐는 투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대답해주신다.


가정폭력이겠지...


아...

그냥 놀라웠다.

늘상 둔하고 눈치 없다 생각했던 남편의 예측력이 놀라울 수도 있는데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는 그닥 적용되지 않는 남편의 뛰어난 미디어 문해력을 종종 보아왔던 터라 그 예측 자체가 놀라운 건 아니었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폭행당한 듯 다쳤고, 엄마가 다쳤다며 휴가를 쓰는 겨울은 잠적하듯 사라지고, 돌아와서도 장황한 변명 없이 '나중에'를 얘기한다. 그리고 어둡고, 가라앉아 있고, 웃고 있어도 슬퍼 보인다.


그래 가정폭력... 그것 말고는 무엇이겠으랴...

따지고 보면 남편 말이 맞는 말이다. 모든 증거가 그 방향을 향하고 있고, 주인공의 표정 힘없는 말투도 예측을 거들고 있는걸 뭐... 크게 예리한 추리력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근데도 이상하게 그 재빠른 남편의 예측이 좀 미웠다.

내가 장겨울 선생도 아닌데 그리고 이게 현실상황도 아닌데 드라마 상황을 쉽게 예측하는 것뿐인 남편의 한 마디에 내가 마치 장겨울 선생인 듯 낭패감과 비참함을 느끼는 건...

 그래 조금 오바지...


웃고 있어도 울고 있는 것 같다.


말하지 않으면 모를 거란 믿음으로 (우리 눈엔 웃는 거처럼 보이지 않으나)웃고, 일하며 떠들고, 발끝까지 힘을 실어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내려 용을 쓰고 있는 장겨울 선생의 발버둥이 얼마나 쉽게 눈에 띄는지, 주위의 모든 사람이 자신은 애써 숨기고 싶어 하는 상황을 이렇게까지 쉽게(우리 남편 같이 남에 일에 관심 없는 사람도) 예측하고 있음을 상상이나 할까?


아픈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위로가 필요하다.


알아차려 주고 공감해 주는

'아는척'의 위로,


그리고...

알리고 싶은 순간까지 몰라주,

혹시 좀 이상하라도 절대 짐작하지도 발설하지도 않는

 '모른척'의 위로...


그런 의미에서 정원의 위로는 참... 적당하다.


모른척인지 모름인지 구별이 안되는 안정원의 표정


왜 안 물어보세요?
네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아서 기다렸지...



모든 걸 듣고 나서도 정원은 짐작도 못했다는 놀란 얼굴로 따뜻하고 섬세한 위로를 건넨다. 그의 놀람이 진정 '모름'인지 '모른척'인지 알 방법이 없을 정도니 감추고 싶었던 겨울의 마음을 위로 하기에 충분하다.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위로할 길은 모르는 것 밖에 없다. 따뜻하지만 눈치챌 것 같은 사람, 무심하지만 모를 것 같은 사람 중 웅크리며 후자를 찾을 정말 아픈 겨울에게 따뜻하지만 함부로 눈치채지 않는 정원이 얼마나  '기적' 같은 사람일까?




문득...

 지나치게 짠내가 나는 건 바라지 않는 마음에 겨울의 10년 후를 예측해 보자.

10년쯤 과거 연인이었던 사람과 살면 그 딱 맞는 사람이 내게 오는 '기적'이 어디까지 상쇄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알것이다.

사는 동안 겨울은 눈치 없고 빨리 알아채지 못하는 '말해주기 전엔 늘 모르는' 정원을 얼마나 답답해하며 복장이 터질까?그때 그 '모름'이 '모른척'으로 하는 배려가 아닌 진짜 모르는 것이었구나 깨달아 지는 순간... 현타가 온다. 하지만 겨울은 그 순간 그의 '모름'이 얼마나 든든한 위로였던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훗날에도 그가 '기적'으로 존재할 것이므로...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장겨울 선생에게 감정 이입해 본 나의 전능한 공감능력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그대도 짐작하지 말고 그저 '모름'으로 나를 위로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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