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만 놓고 보면 '사람이 아주 게으르다.'라는 평이 붙기 딱 좋다. 두세 단계는 뛰어넘은 듯한 정리...
그런데 좀 억울하다. 사용한 물건을 정리하는 속도에 있어 내가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는 편은 아닌데... 내 정리 속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애들하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꾸며놓은 크리스마스트리와 소품 정리를 그 해를 넘겨서 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꺼내는 것 보다 정리하는 것이 열 배는 더 어렵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도 열이 끌어 오르는지 선풍기 켜고 자고 싶다는 아들 녀석을 말리며 잠옷만 벗고 자도 시원할 거라고 말해준 통에 오늘 선풍기를 정리하는 게 맞나 의구심을 가지고 선풍기를 거둬들이며 이번 여름이 끝나면 폐기 처리할 계획이었던 오래된 선풍기를 내다 놓으러 나갔는데... 불어오는 바람과 찬 바깥공기가 어이가 없어 다시 들어와 아이들의 패딩과 플리스를 꺼내놓은 것이다.
선풍기를 정리하려고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더니 패딩을 입고 편의점 앞을 서성이는 중학생 아이들이 보인다.
계절이 이런 식이면 내 옷장에 걸려있는 간절기 아우터들을 불쌍해서 어쩌란 말인가!!
내일 아침 출근길에 뭘 입고 나가야 하나?라는 세상 내게 젤 취미 없는 고민이 일요일 오후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 옷만 고민하면 되는 게 아니라 출근 후 등교해야 할 아이들 옷이 더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