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지상 최대 고민이던 여중생 시설 고등부 총무 오빠가 어젯밤 꿈에 나왔다. 그당시 그 오빠를 내가 잠못이루도록 연모했다거나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잠시라도 그리워해 보았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문득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 본 적이 있던가? 그랬었나? 추호도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사실 그랬는지 어땠는지 기억도 잘 나질 않는다. 그랬거나 아니었거나 강한 부정도 긍정도 큰 의미 없는 세월이 그 사이에 존재하지 않나? 사실문제의그 총무 오빠 이름도 기억나질 않는다.
꿈의 수위와 내용에 대해 밝힐 의사는 전혀 없지만 (마흔 넘은 아줌마의 꿈은 상당히 창의적이고 위험하다) 중간에 살짝 잠에서 깼을 때 짜증과 안타까움이 한없이 밀려오며 다시 잠들면 이 꿈을 이어서 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단 정도는 고백할 수 있다.
제발 다시 그 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하던 내 나이 이제 방년 43세...
어젯밤 꿈은 세상 누가 뭐라든 나는 나이가 든 만큼 마음도 함께 늙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내게 꽤나 큰 낭패감을 주는 사건이었다. 이런 하찮은 꿈 한번에 대상도 없이 이리 마음이 살랑 거리니 말이다.
얼마 전 중도중복장애인 성교육 수업에서 교수님이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김은혜 선생님 선생님에게 로맨스는 무엇인가요?
중도장애인 성교육에서 그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어야 할 것이 "내 몸에 손 대시 마세요!"를 외치며 자기 몸을 지키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느끼는 이성에 대한 감정을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셔서 고학번 탑 3에 랭크된 만만한 아줌마인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교수님의 요지는 누구라도 로맨스를 가질 권리와 자유가 있다 였겠지... 하지만 나는 뜬금없이 그 자리에서 계획에 없던 커밍아웃을 했다.
교수님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근데 그러한 분류에서 자꾸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집단이 있는데 그건 바로 무성애자입니다. 저는 제가 그 무성애자 집단에 속하지 않나 싶습니다.
말하면서도 내가 먼 뻘소릴 비싼 대학원 수업에서 하고 있나 싶었지만 뭐 뱉은 말이 평소 내 생각인걸 어쩌랴... 인생에서 그눔에 얼어 죽을 '로맨스'가 빠지고 나면 삶의 효율성이 얼마나 향상되는가 느끼고 살고 있는지라 웬만하면 젊을 때 원 없이 하고 이만큼 살았으면 이 바쁘고 고단한 삶에 로맨스 정도는 판타지 영역으로 돌리지 않아도 되나 생각한다고 얘기했더니 오십 대 골드미스로 짐작되는 우리 교수님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시며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데... 하셨으나 수업을 듣는 내 연배의 대학원 생들의 막강한 지지가 수업 이후 카톡으로 돌아왔다.
카톡 카톡~ 선생님의 커밍아웃을 지지합니다. ㅋㅋㅋㅋㅋㅋ
뜻밖의 커밍아웃으로 잠깐 웃음거리를 제공했지만 저 생각이 나의 지배적인 생각임은 분명하다. 더 이상의 로맨스는 없다. 굳이 남겨둔다면 그것은 리프탄 칼립스 같은 판타지의 영역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따라서 나의 로맨스는 현실 영역과는 점점 더 동떨어져 갈 것이다.
어젯밤 30여 년 전 고등부 총무님과의 급만남으로(꿈인지 생시인지...) 잠깐 나의 무성애자 커밍아웃을 번복해야 하는 게 아닌가 흔들렸으나 이는 태고적부터 이어져 온 나의 DNA에 남아있는 문신과 같은 희미한 흔적이 무의식 영역에 발현된 것일 뿐이라 결론 내리고, 확고한 무성애자의 삶을 이어가기로 다시 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