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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Dec 26. 2020

나도 모르는 나

"선배, 이 사람 정말 잘 맞춰요."

"나도 모르는 내 성격을 어떻게 맞춰?"


울산 어딘가의 한의사 분이라 했다. 사람의 성격과 체질에 따라 약을 지어주는데 정말 영험(?)하다는 후배의 권유에 나는 거절 아닌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혈액형부터 MBTI까지, 사람들은 때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성격이나 유형을 구분 짓길 좋아하고 그 결과에 스스로를 얽매려고 한다고 느꼈다. 나는 무슨 유형이라서 그랬나 봐, 누구는 혈액형이 무엇이라 그랬나 봐...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깡그리 무시한 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학창 시절 소심하기 짝이 없었던 선배가 있었다. 항상 주눅 든 모습에 자신감 없는 발걸음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스스로가 소심하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누구나 선망하고 권력을 가진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몇 년후에 잠깐 만났던 그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당당해져 있었다. 당당함을 넘어선 거만함에 거부감이 들 만큼... 세월과 환경이 사람을 바꾼 것이었다.


나는 대체적으로 급하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편이고, 단기간의 압박에도 잘 견디는 편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모습은 조직 내에서 일을 할 때만 그렇다는 것을 몇 년 전에 느꼈다. 찬찬히 돌이켜보니 늘 비슷한 일과 분위기에서 흘러가는 조직 내에서의 일에 동일한 반응을 하니 그것이 내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다. 몇 달간 쉴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세상 밖에 잠시 나온 나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고, 행동을 했다. 나의 모습은 나도 몰랐던 것이었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 어제 실패를 경험한 '나'와 어제 성공을 경험한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제 로또 1등이 된 나는 행운이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펼쳐 보일 테지만, 어제 예상치 못한 타인의 잘못으로 발생한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되었다면 낙담한 나의 감정이 나를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았지만, 나의 감정선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고 그 감정선을 읽어내는 것만으로 나를 정의할 수 없다. 나를 복사하여 둔다 하더라도 경험과 환경이 다르다면 잠깐의 시간만으로도 '복사한 나'는 타인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인간이다.


토요일 아침, 눈을 떠 커피를 마시는데 카톡 메시지가 들어왔다.

최근 들어 심사가 복잡한 일을 겪고 있는 후배가 밤새 걱정스러워 잠을 못 잤다고... 이런 일에 이렇게 반응하는 자신이 싫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자신이 'ISFJ' 유형이라 그런 것 같다는 메시지에 결국 전화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규정짓지 말라고... 네가 내릴 결정은 네 손에 있는 것이지 MBTI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고...


모든 물음에 막힘없이 대답한다는 유명한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동네의 영리한 한 꼬마가 참새 한 마리를 손에 쥐고 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이 새는 죽을까요? 살까요?"
죽는다고 하면 새를 날려 보낼 것이요, 산다고 하면 죽일 것이기에 맞출 수 없는 문제라 생각했다.
잠시 동안 새를 응시하던 스님이 말문을 열었다.

"그건 네 손에 달려있구나."


성격유형의 부정적인 면은 자신이 감추고 싶은 자신의 약점을 '공인되었다고 믿는' 무엇인가에 의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늘 어려운 환경에 있었기에 실패가 많았을 수도 있고, 이상이 높아 실패가 많았을 수도 있다. 이런 성격 유형에 자신을 구겨 넣지 않길 바란다. 만약 당신이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신이라면 지금과 똑같은 성격을 가질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아프리카 내전지역에 태어났다면 지금과 똑같은 성격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사람은 변한다. 성격 유형에 스스로를 매몰시키지 않길 바란다.


타고난 기질이 감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성격 유형이 100% 쓸모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기질이 감정으로 발현되는 환경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기질이 같아도 성격은 다르게 발현될 수 있고, 또한 변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러한 성격유형 테스트를 하는 동안에는 계속하여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실제 나의 모습을 침범한다. 그래서 성격유형 테스트의 인풋부터 틀리게 입력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인풋은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에 지배당하는 우스운 일이 발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잘못된 인풋을 잘못되었다고 알아차리기 힘들다. 원하는 모습 또한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실제 나의 모습은 스스로 감추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잠시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자.

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더라도 이런 성격이었을까?

내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런 성격을 가질 수 있었을까?

지금의 성격은 지금의 환경에서만 그런 것일 뿐, 당신은 당신을 바꿀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이야기한다.

나도 나를 모른다고.



덧. 굳이 성격유형 테스트를 해보고 싶다면 버커만 테스트를 권하고 싶다.

사실 MBTI의 경우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많은 편이고, 단순히 몇 가지 유형으로 수십억 사람의 성격을 구분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다. 버커만 테스트의 경우에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대인과의 관계 시, 원하는 것을 할 때 등등으로 나름대로 몇 가지 상황에서 발현되는 나의 성격과 반응을 정도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비록 대표적인 몇 가지 환경이지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버커만 테스트를 함께한 한 사람은 메뉴를 고르는데 무려 30분 이상을 쓰고, 회의 시 의견을 내지 않고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의사결정이 빠른 성격으로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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