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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Dec 28. 2020

누군가를 미워하기 전에...

선한 의도와 나쁜 결과

꿈을 먹고사는 지인이 있다. 

그는 정말 꿈을 먹고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보인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이건만 그의 눈을 볼 때는 아직도 20대 때 처음 보았던 그의 눈이 떠오른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겨우 보급되어 갈 무렵이었다.

WWW라는 것이 생소하게 퍼져나갈 무렵 그는 뜬금없이 도메인을 하나 구입했다고 하며, 사업을 제의했다. 그 사업은 로컬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로 맛집 소개와 중고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익숙한 아이템이겠지만 거의 30년 전 그의 생각은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었다.


로컬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그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세상의 혼탁함이 스며들고, 돈의 노예로 바뀌어갔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멀쩡한 직장을 내팽개치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과정을 즐기는 듯했다. 나는 돈을 좇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시달리면서도 꿈을 좇아 사는 그의 모습을 동경했다.


그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꿈을 먹고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제 남은 글에서는 그의 이니셜을 따 HS라 부르자)


 



커뮤니티가 성장의 정점을 향해 갈 무렵 HS는 커뮤니티의 장으로 추대되었다.

계속해서 양보를 거듭하며 주변에 양보를 해왔지만 실질적인 주인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나 싶다가 어느 해 겨울 드디어 일이 터졌다.


모임이 커지기 시작하면 이권을 노리는 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순수하게 한 지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인원을 모은 커뮤니티라면 그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 영향력을 이용해 이득을 얻으려는 무리들이 이빨을 감추고 조금씩 스며들기 마련이다.


커뮤니티 내 중고장터와 협력업체 게시판 등을 개설하자는 건의가 있었지만 HS는 동호회가 상업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끝까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각종 혜택이나 제품을 제공하면서 호의적인 사용기를 부탁하는 경우나, 협력업체 등록 요청을 모두 반대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커뮤니티를 상업화시켜 이권을 얻으려는 운영진들과 마찰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HS의 순수함(?)을 몰랐던 것 같다. 설마 그만큼 나이를 먹고 그렇게 욕심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리라. 모든 이득은 회원들에게 골고루 분배될 수 있고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의 상업적인 활동은 고려해보겠다는 HS의 제안은 그들에겐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다.


결국 마찰은 심화되었고, 운영진들은 일치단결하여 돈벌이가 될 만한 커뮤니티를 통째로 가져오기 위해 HS를 몰아내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여론몰이는 무서웠다. 기득권을 가졌고,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그들의 힘은 무서웠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고, 그의 순수한 의도는 왜곡되어갔다. 권력에 동조한 수많은 빅마우스들이 악의적인 소식을 퍼뜨리기 바빴다. 그에 대한 댓가로 그들은 운영진들이 흘려주는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었다. 


순식간에 HS는 무능력한 운영자로 낙인찍혔고, 그들에게 동조한 이들은 운영진들이 제멋대로 진행하는 각종 협찬이나 혜택의 달콤함에 빠져버렸다. 운영진들은 HS가 진행했던 순수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한 몇 가지 일들을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며, HS가 지칠 때까지 물어뜯었다.


뒤늦게 HS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으나,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HS를 지지했던 이들은 조용히 물러나 있었고, 당시 운영진들은 그들의 카르텔을 견고하게 만들어 둔 상태였다. HS는 끝까지 그들을 자신과 같이 순수한 이상을 가진 사람이라 착각했었다. 그들이 처음부터 돈을 목적으로 가입을 한 하이에나 같은 존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순수한 이상이 아닌 돈과 권력을 목적으로 뭉친 이들을 이길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어떠한 기득권도 포기할 뜻이 없었다. 이미 가진 99도 부족해 나머지 1마저 빼앗아 100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그리고 아주 추웠던 12월 어느 날 운영진들의 모임에 참석을 요청받았다. (나도 당시 운영진 중 한 명이었고, 유일하게 HS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HS를 빼고 나머지 운영진 7명이 모여 HS를 운영자에서 몰아내기 위한 모임이었다. 모두들 이빨을 드러내고 앞으로 맛 볼 돈의 맛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노가 치솟았다.


HS는 단 한 번도 커뮤니티가 자신의 것이라 한 적이 없었다. 그는 늘 '모두'의 것이라 했다.

HS는 운영자란 지위는 '모두'가 만들어 준 것이니, '모두'가 시키는 것을 열심히 해야 하는 위치라 생각했다.


하이에나 같던 운영진은 다 한 번도 커뮤니티가 회원들의 것이라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늘 '내'것이라 했다.

하이에나 같던 운영진은 운영자란 '내' 힘으로 쟁취한 것이니, '내'마음대로 해도 되는 위치라 생각했다.


반대는 나 혼자였다. 돈의 힘은 강력했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고 HS에게 전화했다. 미안하다고...

어린 마음에 이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나에게 고물 자전거를 타고 HS가 집 앞까지 왔다. 어마어마하게 추운 겨울밤의 날 선 바람을 맞으며, 늘 그렇듯 웃는 얼굴로 와서 "괜찮다."라고 했다.

누르고 있던 감정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의 노력과 이상은 그렇게 허무하게 빼앗겨 버렸다.

지켜주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 이후로 나는 결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사람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의 과거를 유심히 바라본다.

이미 힘을 가진 이들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몰아세운다면, 더욱 조심하여 휩쓸리지 않으려 한다.

힘을 가진 이들이 누군가를 비난한다면, 그 비난의 대상은 힘이 없는 이들을 대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선을 다해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도는 드러나지 않고, 실패했을 경우 하이에나들은 결과만을 두고 물어뜯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더라도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다면 그 결과에 가장 아픈 이는 내가 아니다. 

내가 피해를 입을지언정 의도를 가지고 일을 시작한 이는 피해를 입은 나보다 더욱 괴로워한다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결과'가 말해준다고 한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을 거부할 어떠한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결과가 중요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면 어찌해야 하는가?

순수하고 선한 의도로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결과가 나빴다면 나는 그를 비난할 수 있는가?

결과에 대한 아픔에 대해 불평을 하겠지만 의도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선한 의도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존경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와 '결과'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대답이라 할지라도 나는 '의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대답하련다.


당신이 누군가에 대한 실망을 느꼈을 때, 그 실망이 어떤 일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일 때.

누군가의 의도가 어떠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주길 바란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주기 바란다.




HS는 작은 카페의 사장이 되어 코로나의 악몽 속에서 신음하는 소상공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쉰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아직도 아이 같다.

온갖 세상의 풍파에도 여전히 '순수한 의도'를 담고 있는 눈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한다.

아니,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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