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정의와 해답
식당 문 앞에서 매번 주차해 두는 차가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공원으로 연결되는 길이라 길 가에 주차해 두고 오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입구를 가로막은 채로 주차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 검은색 차는 고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입구를 가로막은 위치에 주차를 해 두곤 한다.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며칠 동안 반복적으로 주차를 하곤 했다.
너무나 화간 난 식당 주인이 결국 음식이 담긴 그릇을 주차된 차에 집어던져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날 저녁 차를 본 차주는 식당 주인에게 소리쳤다.
"여기가 당신 땅도 아닌데, 남의 차에 이렇게 음식을 던졌으니 배상해주시오!"
식당 주인도 순순히 배상해 줄 리가 없다.
"여기에 주차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인데 여기에 주차한 당신이 잘못한 거 아니요! 게다가 입구를 가로막아둔 것도 잘못한 것이잖소!"
최대한 점잖게 상황을 옮겨보았다.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는가? 아마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가질 것이다. 어떤 이는 '불법 주차한 차량에 불법으로 대응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를 생각할 것이고, 어떤 이는 '불법주차를 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하는 점은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해답이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불법 주차한 차량에 불법으로 대응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를 문제로 삼는다면 불법 주차한 차량으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볼 때 구제할 수 있는 적법한 방법이 있는가? 없다면 어떤 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 등등으로 생각이 확장될 것이다. 불법주차로 인해 나의 생계가 달린 영업이 어려워질 수 있고, 적법한 절차로 구제할 방법이 없다면 자력 구제가 가능해야 하지 않은가?라는 방향으로 답을 내릴 수도 있게 된다.
반면 '차주는 왜 굳이 여기에 불법주차를 하였는가?'를 문제 삼는다면, 주변의 공영주차장은 충분히 확보되었는지 더 나아가 교통 정책 상 문제가 있는 점은 아닌지를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차장이 없는 상태에서 공원 이용객들은 어떻게 공원을 이용할 수 있는지 등의 방향으로 답을 찾게 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게 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며 삶을 살아간다. 일이라고 하여 단순하게 직업으로서 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넓은 의미로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포함한다. 내가 마실 커피 사이즈를 무엇으로 할지를 고르는 단순한 일부터 아이들의 학원 선택, 나의 직장 선택, 내가 살 곳을 정하는 문제 등등 삶 속에서는 끊임없이 일이 생기고 그것들을 처리해 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삶 속의 일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쌓여 우리의 인생이 정해진다.
즉 매일매일 생겨나는 무수히 많은 일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어떤 종류의 해결책은 해결책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문제를 설정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도의적이거나 감정적인 측면에서의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책 역시 도의적이고 감정적으로 해결이 가능하고, 금전적이거나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책 역시 그에 따르게 된다. 이처럼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문제 정의가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첫 단추가 된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제한하게 된다. 그 안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의 범위에 들어있지 않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매년 우리는 연말이면 다음 해의 계획을 세운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고쳐야 하거나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은 계획에 조차 반영되지 않는다.
후배는 늘 바빴다.
끊임없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새벽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한 학원을 다니고... 그러면서 저녁에는 시간을 쪼개 공부를 위해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편의점에서 일을 했다.
언젠가 서서 바쁘게 김밥을 입에 쑤셔 넣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바쁘게 사냐?"
"형... 나는 돈 많이 벌고 싶어. 그게 다야. 그러니 열심히 살아야지"
"야... 공무원이 돈 많이 벌어? 너 공부하고 있는 자격증 따면 돈 많이 벌 수 있어?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면 나중에 네가 원하는 만큼 돈 많이 벌 수 있어? 원하는 게 돈이라며?"
"......"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김밥이 멈칫하는가 싶더니, 나를 잠깐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하던 공부와 일을 다 때려치운 후배는 갑자기 철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장비를 사고 계약처를 몇 군데 따더니 지금은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다.
어느 날 같이 삼겹살을 굽는 자리에서 그때 그 질문이 고마웠노라고 말해주었다.
열심히만 살면 저절로 원하는 것이 이뤄질 줄 알았는데, 그때 그 질문을 듣고 나서야 자신의 삶의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것임을 알았다고 했다. 그냥 남들이 하길래 무작정 따라만 갔지, 그렇게 따라가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다.
가끔 사람들은 삶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해결에만 집착하면 아무리 해결을 하여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여유로운 생활을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더 바쁘게 일하기 때문에 점점 더 원하는 삶에서 멀어져 가는 사람들처럼, 삶의 진정한 문제를 모르면 원하는 삶에서 점점 멀어지는데 나의 노력이 쓰일 수도 있다. 삶의 문제,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야 그에 맞는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임에도, 대부분의 이들은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한다.
삶의 문제가 명확하게 정의되는 순간부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지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늘도 그저 바쁘게 살며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자.
어쩌면 이렇게 바쁘게 아등바등거릴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엉뚱한 방향으로 바쁘게 움직였을 수도 있다.
올 해가 지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무엇이 나의 문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