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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Jun 12. 2021

잃어버림에 대한 집착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것이 작년이었다.

그것도 12월 31일

공교롭게도 브런치에 올린 100번째 글이었다.


1월 어느 날 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노트북으로 끄적이며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검게 변해버렸다.

그대로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무슨 글을 쓰고 있었는지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건만, 그 때 상황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몇 년간 나와 함께 하던 노트북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사실 별 일이 아니어야 했다.

고작 노트북 하나가 원인모를 이유로 전원이 켜지지 않는 문제였던 것이어야 했다.

우습게도 몇 달은 노트북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는 그 노트북을 버리지 못한 채 책상 위에 올려둔 채 생활을 해 나갔다.

자연스레 책을 읽고 정리하는 일이나, 글을 쓰는 일이 멈춰 버렸다.

그렇게 몇 달을 흘려보냈다.


인간의 집착은 미련하면서도 강력했다.

그냥 새 노트북을 사서 이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진행해 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임에도 무슨 고집에서인지 버티고 또 버텼다.


결국 어느 날 밤, 책상 위 노트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집어들었다.

그리고 나의 생활을 예전처럼 돌리기 위한 새로운 도구를 들였다.

모든 과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갔고, 새로운 도구는 큰 감흥없이 원래 있었던 듯 내 생활에 들어왔다.



인간은 종종 부질없는 것에 집착한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옳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집착한다.

가끔, 아주 가끔은 이런 집착이 성공을 거두고 그 때는 집착이 아닌 ‘집념’ 혹은 ‘근성’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 삶 속의 집착은 후회와 실패의 회상에 좀 더 가깝게 있는 편이다.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전의 나의 노력이 부질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잘못된 길을 걸어왔음을 알아차렸을 때, 쏟아부었던 삶의 시간과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말고 돌아서야 함에도 집착이라는 끈끈이 같은 감정이 쉬이 놓아주지 않음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어느  꿈에서  것처럼 집착에서 벗어난 순간, 집착에 끌려오며 흘려버린 삶이 헛되이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에 분노와 회한에 빠지기도 한다. 집착에 끌려 여기까지  스스로의 모습에 한탄을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나약하거나 어리 집착에 끌려온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도리어 나약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았기 때문에 집착을 끊을  있었고, 돌아볼  있는 지금을 가질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집착에 쉬이 굴복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껏 살아온 삶의 무게가 함께 짓누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부질없는 집착에 휘둘리는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가 집착의 뒷면에 숨어 있을 수 있다. 가늠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집착을 끊어낸 당신은 어쩌면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를 향한 타인의 평가, 타인을 향한 나의 평가야말로 때로는 한없이 부질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사소한 집착이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집착이든 집착이라는 괴물에게 끌려다니며 삶을 강탈당하는 모든 이들이 더 이상 삶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란다.

집착에 휘둘려 삶을 빼앗겼더라도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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