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고픈 이들에게…
갓난아기에게 쏟아지는 사랑을 본 적이 있는지?
갓난아기가 유전적, 생물학적으로 나와 연결이 되어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나와 어떠한 관계가 없더라도 존재 자체만으로 조건 없고 차별 없는 사랑을 받는다.
그저 하품을 한 번 하더라도, 그저 눈을 한 번 떴을 뿐이더라도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탄성을 자아내며 쉴 틈 없는 사랑을 주려한다.
그저 주기만 할 뿐, 돌려받을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주기 위한 행렬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를 하여 큰돈을 벌지 못해도 되고, 유명인이 아니어도 된다.
그래도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슬프게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더 이상 사랑은 ‘존재’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어느 순간, 사랑은 ‘성취’로 쟁취해야 할 보상이 되어버린다.
단지 하품을 하고, 눈을 맞춰주고, 몸을 뒤집었을 뿐임에도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어른’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부터 사랑은 끝없이 쟁취해야 하는 삶의 전리품이 되어버린다.
물론 형제, 자매, 부모님, 친구나 연인은 외적인 조건 없이도 나를 사랑하겠다고 약속하겠지만,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그들 이외의 수많은 조건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냉담하고 세파를 거친 ‘어른’이 되어갈수록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때로는 종교적, 정치적으로 편견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변모해간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성숙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분명히 낫다는 확신을 점차 강화시켜간다.
‘어른’들은 언제 어디서나 확실한 권력관계를 지향한다. 그것이 매너와 겸손함으로 둘러싸여 있더라도 말이다.
‘어른’들에게 권력에의 집착은 단순한 힘의 우위를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닌, 사랑이라는 전리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세련된 매너와 겸손함, 부드러운 언변과 자신감, 샤프한 지성과 온유함, 좋은 학교와 교육, 좋은 직장과 높은 지위…
이러한 것들을 가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갓난아기 때 경험했던 조건 없고 차별 없는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
사실 이러한 것들을 가지더라도 타인들의 선망이나 부러움은 받을지언정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는 가면무도회와 같다.
그 누구도 자신의 상사에게 당신을 밟고 더 높은 지위까지 닿고 싶어 가까워지려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멍청해도 당신의 권세와 재산이 욕심나서 당신과 사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알지만 모른 척하는 것이 ‘어른’들의 세계이다.
누군가 용기를 내서 혹은 진실되게 권력 혹은 재산 때문에 당신과 친하게 지낸다고 말을 한다면 그것이 사실임을 알면서도 그 관계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된다.
관계의 근저에는 권력, 재산, 명성과 같은 속물적인 목적이 존재하더라도,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알면서도 모른 척, 이 관계는 어릴 적 받았던 조건 없는 그런 사랑이라 믿고 싶은 것이다.
부나 권력이 사라지면 주변인들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사랑을 얻는 진정한 조건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픈 욕망 때문에 진실에 눈을 감아야 한다.
주변인들은 조건이 아닌 나의 존재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이 있다고…
당신과 가까워지려는 것이 당신의 부와 권력을 탐해서라고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듯, 부와 권력을 가지고자 하는 목적이 관심과 사랑이라는 말 또한 할 수 없는 것이 ‘어른’들의 세상이다.
부와 권력을 드러내어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을 느끼고 싶은 것이 마음속 깊은 곳의 욕망임에도,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미숙한 ‘어른’ 때로는 관심종자라는 과격한 표현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부와 권력은 ‘어른’이라면 응당 관심을 가지고, 성과를 내어야 하는 ‘어른’들의 주제가 되었건만 정작 부와 권력으로 얻고자 하는 관심과 사랑에 대해서는 금기처럼 대한다.
사랑을 받고 싶어 ‘어른’의 성취를 이루고자 동분서주하지만, 정작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어른’의 삶이 되어버렸다.
억눌린 사랑받고 싶은 욕망은 마음의 빈틈으로 터지게 마련이다.
터져 나온 욕망은 온전하게 흐를 수 없다.
터져 나온 욕망의 고름을 뒤집어쓴 ‘어른’은 더욱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어버린다.
둘러보자. 넘치는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 친구들, 부모님들, 연인들…
그리고 사랑한다 말해보자.
아이들이라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웃으며 껴안고 놀아보자.
친구들이라면 친구로 있어줘서 고맙다 해보자.
부모님 껴안고 고맙다고 해보자.
그렇게 사랑을 아낌없이 뿌려보자.
그리고 돌아오는 사랑을 가식 없이 그대로 온전하게 받아들이자.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사랑을 채워나가며, 욕망의 고름을 조금씩 닦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아기 같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