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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07. 2021

삶이 비극이라 느껴질 때

마음 챙기기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죽어야 할 사람이었다.
내일, 내일, 또 내일이 이렇게 작은 걸음으로
하루하루 정해진 시간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기어가는구나.
우리가 지나온 모든 어제는
바보들이 한 줌의 먼지로,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비추어준다.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한낱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제 시간이 되면 무대 위에서 뽐내며 시끄럽게 떠들지만
어느덧 사라져 더 이상 들리지 않는구나.
그것은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
소음과 광기로 가득 차 있으니
아무런 의미도 없구나.
<맥베스, 5막 5장> 셰익스피어


그대는 승자인가?

비극과 희극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끝나야 하는 것인가?

한동안 고민을 했었다.

책을 뒤적이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야기 속에는 세상이 있다.

이야기 속 세상은 현실을 반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 세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다.

이야기 속에서 세상과 주인공은 경합을 벌인다.


세상이 주인공을 이길 경우, 우리는 그 이야기를 ‘비극’이라 부른다.

주인공이 세상을 이길 경우, 우리는 그 이야기를 ‘희극’이라 부른다.


개인이 세계를 이기는 일이 더 허구적임에도,

개인이 세계를 이기는 일이 더 흔치 않은 일임에도,

우리는 자신의 삶이 당연히 ‘희극’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야기 속에서는 세상과 맞서는 ‘라는 개인이 당연히 승자가 된다고 믿지만,

세상의 풍파에 휩쓸려 ‘나’라는 개인은 끊임없이 내몰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대는 맞설  는가?

현실 속에서 ‘세상’이란 존재는 ‘개인’이 맞설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맞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거대함에 압도당한다.


현실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치기 없다.’, ‘철이 덜 들었다.’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현실에 순응하여 살겠다는 생각을 ‘처세가 좋다.’, ‘성숙했다.’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더 이상 그 누구도 호기롭게, 패기 있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30세가 다 되어갈 때까지 끊임없이 주입되는 것은 모두 실패하지 않는 법이다.


실패하지 않는 법만을 배워온 우리에게 실패는 절대 겪어서는 안 될 일이 되었다.

다들 ‘도전’을 내세우면서도, ‘실패하지 않는 법’만을 알려준다.

도전조차도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도전은 글자 그대로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도전은 수많은 실패를 전제로 깔고 있다. 만만한 것이라면 도전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실패를 전제로 하는 도전의 속성 때문에 삶의 조각조각들은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세상에 맞서 나의 세계를 만드는 각 인생의 조각들은 대부분 비극으로 채색되기 쉽다.

하지만 비극으로 채색된 삶의 편린들이 하나둘씩 모여 갈수록,

거대한 인생의 그림이 완성된다.


오늘이라는 삶의 조각은 비록 비극으로 끝났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내 전체 인생이 비극으로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끔은 나 자신조차 내가 어떠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위의 아기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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