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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Aug 29. 2020

엉망진창이라도 거기서부터 시작하라

완성하라! #03 불안

불안

©pixabay

불행히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항상 불안하다고 한다.

어느 유명한 철학자는 이미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비록 불안의 근원을 파헤치는 일이 개인의 성공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근원을 파헤치는 일은 철학자들에게 맡겨두고 눈 앞의 문제부터 해결하자.


불안이라는 감정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어떤 일을 완성해 가는 길에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불안들이 생겨난다.

'이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맞을까?',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을까?', '여기에 과연 이만큼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옳은가?' 등의 불안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심지어 목표를 달성한 그 순간에도 불안감은 모습을 바꾸어 샘솟아 오른다.


불안은 결국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숙명이다.


숙명적인 이 불안 때문에 얼음에서 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끓어오르려면 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얼음인 나 자신을 녹이는 이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물이 되는 과정에 잘못되지는 않는 것인지, 물이 된다 해도 끓어오를 수 있을 것인지...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샘솟아 오르는 이러한 불안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삶을 단순하고 규칙적으로 만들어 불안을 피하고자 한다.


불안은 삶을 단순하고 규칙적으로 만든다.


단순하고 규칙적인 삶에서는 얼음을 녹여 물이 될 만큼의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

예측 가능하고 규칙적인 삶 속에서는 불안을 줄일 수 있지만, 반대로 삶을 풍성하게 만들 기회를 놓치게 된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예스맨'은 이혼당하고 전처에게 망신을 당하고, 승진도 좌천되어 버린 매사 부정적인 주인공인 칼(짐 캐리)이 "Yes is the new no"라는 자기 계발 세미나에 참석 후 모든 일에 무조건 "YES"라고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코미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삶에서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은 "YES"라고 하면서 단순하고 규칙적인 삶이 무너지기 시작하지만 반대로 풍성한 사건들과 인간관계를 가지게 된다.


불안으로 스스로의 삶을 규칙 속에 가둬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되돌아보라.

영화 속 주인공처럼 "YES"를 외침으로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삶이 풍성해지고 (때로는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는 것은 보장할 수 있다.

의외로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는 기업의 내부를 살펴보면 개개인의 역량은 충분하지만 스스로 그 역량을 봉인해 두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학창 시절까지 모두가 정해진 교육과정을 거쳐 원치 않더라도 동일한 길을 걸어야 할 때는 단순하고 규칙적인 삶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나, 현실세계에서는 단순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 변화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삶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함과 규칙 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쳇바퀴 돌 듯 스스로 정해놓은 틀 속에서는 아무리 뛰어봐야 쳇바퀴를 돌리는 일에 능숙해질뿐 쳇바퀴를 벗어날 수는 없다.


미숙할수록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다.

©pixabay

새 학기가 시작되면 공책부터 새 것으로 바꿨다.

지저분해진 공책이 싫어 새하얗게 비어있는 새로운 공책 펼쳐 정성 들여 첫 번째 페이지를 채워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날아가는 글씨와 뒤죽박죽인 공책으로 변하곤 했었다.

그리고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새롭게 잘해보겠다고 다짐하며 새 공책을 꺼내곤 했다.

하지만 공책을 채우는 주체가 변하지 않으면 공책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지저분한 모습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어떤 일을 하는 과정이 완벽하게 조율되고, 매끄럽고,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렇게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숙달된 일이 과연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와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삶의 대부분은 어설프게 쌓여가는 과정이다.


삶과 부대끼며 살아온 시간이 짧을수록 어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다. 처음 다시 시작하면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새 학기 새 공책처럼 깨끗하게 첫 페이지부터 원하던 형태로 채워가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된다.


지난한 완성의 과정을 걸어가다 보면 원치 않는 일, 예상치 못한 일, 알고 있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일로 채워질 때도 있기 마련이다. 삶의 미숙함이 클수록 이런 일을 겪으면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망을 크게 느끼게 된다. 그 모든 일들이 자신의 삶인데도 그 시간을 부정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욕망에 이끌리게 된다. 삶의 미숙함은 삶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게 복잡한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얽혀버린 삶의 매듭을 풀기에 지쳐 꼬여버린 매듭을 잘라버린 후 새롭게 묶으려는 어리석음에 설득당하게 된다.


엉망진창이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라.


엉망진창인 삶의 과정을 밟고 왔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삶은 쌓아갈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완성'을 만들기 위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길에서 넘어졌다면 다친 상처를 움켜잡고 일어서서 다시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상처가 쓰리고 흉터가 남겠지만 그 모든 것이 내가 걸어온 길의 과정인 것이다. 상처 없이 완주를 하고 싶다고 지금 걸어가고 있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되어도 넘어졌던 자신이 변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길에서 넘어지지 않고 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모두 다 뒤집어 버리고 싶다.'는 말을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모두 다 뒤집어엎어 버린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삶의 과정은 게임이 아니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완성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불안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려는 욕망에 시달릴 것이다. 삶은 게임 캐릭터처럼 원하는 재능을 부여받고 그 재능대로 기술을 연마해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과정이다. 올바른 성장 과정의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때로는 전혀 다른 경험이 뜻밖의 강점이 되기도 한다.


완성을 향해 가는 길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야 한다.

초행길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흉터를 남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모든 것을 완성을 위한 여정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가보지 못했던 길이고 그 길 위에서 상처를 입고 시행착오를 겪기 때문에 완성을 향해 가는 여정 내내 불안함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원하지 않더라도 불안은 항상 동행할 것이다. 어차피 같이 가야 할 길동무라면 껴안고 가자. 불안이라는 길동무가 함께 한다는 것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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