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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01. 2020

쉬운 것부터...

완성하라! #06 쉬운 것부터

완성하라! #06 쉬운 것부터

쉬운 것부터

©pixabay
선배인 TH는 40이 넘어 다니던 회사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곧 자신도 정리해고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기술사 자격을 취득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날부터 시험공부에 몰두했다.
이미 충분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그는 기술사와 연관된 하위 자격증부터 하나씩 취득하면서 공부를 진행해 나갔다.
어차피 기술사 공부는 장기전이 될 터이고,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지표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아무런 성취감 없이 몇 년을 버틴다는 것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약 6개월마다 하나씩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결국 2년 만에 기술사 자격을 취득했다.


선배의 시험 준비 기간을 바라보며 지붕을 올리기 위해 곳곳에 기둥을 세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삶의 무게를 지지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기둥을 세울 때 만들고 있는 기둥을 무작정 튼튼하게 만들어 세우기보다 약하더라도 우선 당장의 삶을 지지할 수 있는 기둥들을 먼저 세워놓고 삶 전체를 굵고 튼튼한 기둥을 세우는 모습이었다.


삶의 무게는 조금씩 세월을 담아가며 무거워져 간다.


©pixabay

삶의 무게는 조금씩 세월을 담아가며 무거워져 간다.

자신에게 지워지는 수많은 역할과 기대들이 시나브로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무게가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무게를 체감했을 때, 바로 그때가 삶의 무게를 지탱하고 버틸 수 있도록 해줄 기둥들을 세워가야 할 때이다. 삶의 무게를 버티지 못할 만큼 무거워진 순간부터는 작은 기둥들을 하나씩 세워가는 과정이 어렵고 삶의 무게에 쫓겨 한 번에 삶을 뒤집을 수 있는 로또와 같은 허황된 한 방을 기대하게 된다.

허황된 꿈이 자신을 끌고 다니기 전, 삶의 무게감을 느껴지는 그때마다 작은 기둥을 하나씩 세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스스로는 이미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하나로는 삶을 버티기에 턱없이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수십, 수백의 작은 기둥이 모이면 삶을 지탱하고 버텨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작은 완성을 모아가는 일이 결국 큰 완성을 이루는 과정이자, 전부이다.

쉬운 것이라고 얕볼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작은 완성이라도 이뤄 놓는 것이 필요하다.

삶과 완성은 쌓여가는 것이다.

나이, 학력,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항상 바닥부터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특히 나이가 들 수록 주변의 성공한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과 같은 수준의 성공을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그러한 강박은 쉬워 보이는 일, 수준 낮은 일을 외면하게 한다.


TH선배와 같은 스터디 그룹에 해당 분야의 경력도 없고 지난 30여 년간 시험을 경험하지 않은 분이 계셨다. 그분에게 TH선배는 산업기사나 기사 같은 하위 시험을 준비하며 기초도 닦고 시험에 대한 감도 되살려 보라는 조언을 드리고 공학 기초가 되는 전공서적도 다시 볼 것을 권유했으나 남들은 모두 실전 같은 시험 준비를 준비하고, 한 명씩 시험에 합격하는 분위기에 혼자 수준 낮은 공부를 하는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하셨다. 이후 3년 지났지만 그분은 여전히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점수로 계속해서 시험에 도전 중이라 들었다.


내가 작품 하나를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안다면
사람들은 내 작품을 보고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이다.
– 미켈란젤로


작은 것을 완성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pixabay

무엇인가를 수 없이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삶의 변화가 없다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완성했는지를 돌이켜봐야 한다. 공무원 시험을 3년간 죽을 만큼 했더라도 합격하지 않았다면 나는 공무원이 아닌 것처럼 완성이 되지 않은 노력은 흘러가버릴 뿐 내 삶의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자유형만 5번째 배운다는 형이 있다. 자세는 엉망이었고 호흡은 더욱 엉망이었다.

자유형을 5번째 배운다는 것에 알 수 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같이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자주 하며 그 자유형 수업에서 고수 대접을 받았었다. 6개월이 지난 후 그 형은 ‘바쁜 업무’와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이유로 자유형 배우기를 중간에 그만두었고, 그 형에게 발차기 조언을 들었던 분들은 이제 핀수영을 하거나 바다 수영을 하러 함께 부산으로 가곤 한다. 자유형을 완성하지 않은 형은 5번에 걸친 몇 주간의 노력은 한낱 추억으로 사라졌고, 자유형을 완성한 나머지 분들은 평생 물을 친구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자유형이라는 작은 완성으로 평생 수영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고, 그 과정이 몇 주정도에 불과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완성의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첫 번째 계단을 오르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지만 그 계단을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다음 계단으로 오를 수 없다. 스스로 돈을 내고 찾아온 수영도 이런데 자신조차 설득 못한 결심을 가지고 타인이 오랜 시간 연마하여 이뤄온 완성의 계단을 한 번에 뛰어오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대답은 스스로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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