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고수는 없다.

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5편

by 서안

"그 이야기 들었어?"

또 시작한다.

코인광풍이 불어닥칠 때, 부동산 광풍이 몰아닥칠 때, 주식 광풍이 몰아닥칠 때마다 사내에는 숨어 있던 고수들이 때마침 나타난다.

내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지겨운 스토리가 입에서 불을 뿜는다.


조용히 듣고만 있는다.

아무리 떠들어도 월급쟁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들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자신의 실력과 선구안으로 착각하는 때가 있다.

그늘 아래 있던 황소가 단지 몇 발자국 움직여 햇살아래로 나간 것임을 모르기에,

황소 등 위에 살고 있던 벼룩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빛나는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대부분 그렇다.




후배 한 명이 도통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일을 하지 않고 팀원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으로 소문이 파다했다.

회식을 거르는 것은 기본에 잦은 지각과 무단결근으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되기까지 했다.

어찌하다 그를 케어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사람을 멀리하고 퇴근시간이면 칼같이 사라져 저녁 약속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었고,

몇 차례의 제안 끝에 어렵게 점심시간에 같이 나가는 약속을 잡았다.


아무 말 없이 밥먹고 시시하고 경박한 농담만으로 점심시간을 모두 채웠다.

종종 커피나 한 잔하면서 시덥잖은 이야기만 해댔다.

의외로 어느 날 먼저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나 또한 퇴근 후에 회사사람이랑 시간 보내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웃더니 그럴 것 같다고 하며, 내일 점심식사를 나가서 하자고 했다.


"그냥 반년만 놔둬줘요. 그럼 나 조용히 회사 나갈테니."

밑도 끝도 없는 협박성 발언에 왜라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다.

대신 너 자신이나 가족의 어려움 때문에 말못할 일이 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잘못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면 언제라도 다시 말해달라했다.

대신 주변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일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알았다고 했다.

이유를 묻지 않아서 고맙다고 했다.

어찌되었던 그 날이후 그는 평범한 월급쟁이같은 모습으로 변해갔고, 팀장은 나를 붙이는 전략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는지 뿌듯하게 개과천선한 팀원 이야기를 뿌리고 다녔다.

(회식 불참은 여전했었다.)


반년 후 그 후배는 정말 사직서를 제출했다.

깔끔하게. 망설임 없이.

마지막 출근날, 인사하러 찾아온 그는 나에게 만약 자신이 로또가 되었다면 뭘 원하느냐고 물었다.

당당하게 치킨 한마리라고 했다.

진심으로 말해보라고 했다.

진지하게 치킨 한마리라고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퇴근길에 그에게서 치킨 쿠폰 다섯장을 받았다.

고맙다는 메시지와 함께.

뭐가 고맙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알게된 그 후배는 주식투자에 성공해 회사를 그만 둔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퇴근 후엔 하루종일 숙소에 틀어박혀 주식에 관련된 나름대로의 내공을 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문은 무성하게 퍼졌다.

몇 억을 벌었다는 둥,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한다는 둥.


그 해 생일날 또 치킨 쿠폰 다섯장이 날아왔다.

시덥잖은 몇 마디 농담과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소문대로 그는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했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평생 먹고 살 만큼 벌었고, 다 잃어도 다시 그렇게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 회사를 나왔다고 했다.


치킨 쿠폰 열장과 함께 그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딱히 연락을 하고 싶지도, 그의 사생활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관련된 질문을 하는 이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그렇게 잘 알면 이렇게 회사를 다니겠느냐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같은 월급쟁이 신세에 있는 이들은 승률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월급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사내에서 숨어있다 광풍이 불면 등장하는 고수들의 존재는 믿지 않는다.

월급이라는 족쇄를 끊을 재주가 있는데 중생들에게 연민을 느껴 회사에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월급에 생계를 기대지 않아도 되는 능력자라면 이미 이곳을 떠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충고하는 이들에게 그런 통찰력이 있으면 먼저 회사를 떠나보라 하는데 아직까지 자의에 의해 회사를 떠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매주 로또를 사는 후배가 있다.

금요일 아침 커피를 함께 마실 때마다 로또가 되면 다음 주 월요일엔 출근을 하지 않을거라 한다.

그리고 나에게 만약 자신이 로또가 되면 뭘 받고 싶으냐고 묻는다.

이번에는 통 크게 불러본다.

치킨 쿠폰 스물네장.

2년동안 매달 한 마리씩 시켜 먹으면서 너를 기억해 주겠다고 덧붙여준다.

진심이냐고 물으면 진지하게 치킨 쿠폰 스물네장이라고 다시 한 번 말해준다.


다음 월요일에도 치킨 쿠폰 스물네장 대신 그 후배와 커피를 한 잔 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1. 불치병임을 알고도 출근을 했다.

2. 줄은 타고 싶다고 타는게 아니다.

3. 사람을 얻는 달콤함

4. 아스팔트에 뒹군건 누군가의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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