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6편
"이제야 말해서 미안하다.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되었다."
얼굴은 웃고 있었고,
입으로는 잘 된 일이라고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는 나를 지탱하는 마지막 남은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
그의 인생을 모두 알 수 없기에 인생 전체를 평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일이라는 범위 내에서 그는 나의 완벽한 롤모델이었다.
진정한 고수는 고수만이 알아본다.
하수들은 고수와 함께 있는 것이 버거울 뿐이다.
고수 앞에서는 함부로 나댈 수 없는 까닭이다.
하수들은 하수들의 세상이 편안하다.
월화수목금일, 일주일에 6일을 붙어 다녔던 나와 그의 사제관계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날 이후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늘 애사심이라는 단어에서 '사'라는 글자는 회사를 의미하는 것 아니라 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을 한 만큼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했다.
실력으로 증명하는 이들에겐 적이 많다.
매끄러운 언변으로 일을 회피하거나, 타인의 공을 은근슬쩍 가로채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수가 되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 과정을 거치기 싫지만 고수로 인정받고 싶은 자들은 거짓과 가식의 가면을 쓰고 고수 행세를 한다.
이런 고수 행세를 하고픈 하수들에게 진정한 고수는 눈에 가시일 뿐이다.
고수들은 위아래가 없다.
그들은 실력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실력으로 평가한다.
실력이 있다면 후배일지라도 배운다.
실력이 없다면 선배일지라도 배제한다.
자신의 실력이라면 회사를 떠나서라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당당하다.
고수들은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신 더 좋은 해결책으로 상황을 마무리한다.
하수들은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데서 우월감을 느낄 뿐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여 우왕좌왕하는 그 모습을 즐길 뿐 진정한 해결책을 내지 못한다.
고수들은 모든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한다.
하수들은 자신이 보호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입을 열지만, 자신의 말이 즉시 결론까지 이르게 되는 급박한 상황에서는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마법의 문구로 상황을 회피한다.
고수들끼리는 서로 통한다.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다른 선배는 진즉 회사를 떠나 홀로 섰다.
혈혈단신으로 업계에서 일어선 실력자이다.
실력자는 늘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은 그뿐이라는 말을 했다.
그도 역시 이 바닥에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 선배뿐이라고 했다.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둘은 전화기를 붙들고 몇 시간이고 해결책을 찾으려 서로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가 떠난 후 그의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그에게 무참히 밟혀왔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 많이 지났고, 그가 남겨준 것은 너무 컸다.
고수들 사이에서 나는 꼬꼬마였지만, 고수들이 비워준 세상에서는 더 이상 꼬꼬마가 아니었다.
적들의 공격은 싱겁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의 소식을 들었다.
세계적인 기업에 입사를 하였다고 한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를 품을 정도가 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그 기업에서 한국지사에 지원하기엔 지나치게 높은 능력을 가졌다고 그를 평가했다는 소식은 한 동안 사내를 떠들썩하게 했다.
동경만 하던 그 회사의 일원이 된 것도 부족해 지나치게 높은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를 받은 그는 남은 후배들의 우상이 되었다.
떠난 후에야 우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