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3편
"입을 찢어버릴..."
이 무슨 막말인가 싶었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이 곳에서 이런 막말을 들을거라 생각조차 못했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내 귓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마땅히 해 주어야 할 일이라는 나의 설명에 돌아온 것은 입을 찢어버리겠다는 고함소리 뿐이었다.
며칠 후 나의 입을 찢어버리겠다는 사람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고약한 첫 인상을 던져준 그 사람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는 유명했다.
막말과 욱하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다행이라면 나에게만 입을 찢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주 입을 찢겠다고 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당시 나의 사수는 이 바닥에서 무쌍난무를 보이는 내공의 소유자로 유명했다.
허튼 소리를 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을 쳤고,
아는 척을 하거나 남의 공을 가로채는 자들을 면전에서 경멸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던 멀리 독일에서 날아온 그들은 2시간만에 잘못을 시인해야 했으며,
자신의 인사권자에게 모르면 입을 열지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의 사수가 인정하는 제대로 된 실력자 중 하나로 그를 뽑았다.
물론 성격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단서는 달긴 했지만.
험악한 고성이 스피커를 통해 쏟아져나왔다. 그 분의 목소리였다.
최선을 다해 다듬고 순화해서 표현하자면 현장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너희는 편안하게 앉아 있느냐는 질책이었다.
출근과 동시에 시작된 컨퍼런스콜은 점점 험악해져갔다.
닫힌 회의실 문을 뚫고 욕설과 질책이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렸다.
두리번 거리며 누군가를 찾는다.
다들 눈이 마주칠까 고개를 숙이고 모니터를 응시한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들어오라 손짓을 한다.
나는 아닐거야 되뇌이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따라 들어간다.
회의실 분위기는 질식할만큼 무거웠다.
나를 데리고 왔다는 말을 스피커를 통해 흘려 넣는다.
대뜸 오라한다. 현장으로. 지금 즉시.
나는 담당자가 아니라 변명을 해보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은 사람들은 인당수에 심청을 던지듯 나를 현장에 던져넣는다.
일은 계속 꼬여갔다.
나의 무지는 마땅히 혼날 일이었다.
이런 일은 해 본적이 없다는 말은 구차한 변명으로 치부되었다.
이것도 모르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입을 찢겠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에 상응할 만한 표현들이 등장했다.
확실한 것은 그는 그의 일을 떠넘기지 않았고, 감탄할만큼 많은 것을 알고 처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하나를 풀기가 무섭게 두개가 터졌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문제가 부풀어 터졌다.
한 쪽을 꿰매기가 무섭게 다른 쪽이 터졌다.
잠들기 전에도 문제가 터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문제가 터졌다.
결국 클라이언트의 분노가 터졌다.
그들도 사람이니까.
더 이상 손 쓸 수가 없는 지경까지 몰린 어느 날 밤이었다.
새벽녘 숙소로 들어가 누우려는데 잠시 나오라고 한다.
내일 아침 짐싸서 복귀하라고 한다.
윗사람들에게는 다 이야기 해뒀으니 걱정말라 하며 맥주 한 캔을 내민다.
빨리가고 싶다고 조금만 자고 운전하면 졸릴 수 있으니 푹 자고 가라 한다.
갑자기 의리가 샘솟았다.
어떻게 혼자 두고 가느냐며 의리로 뭉친 대사를 내뱉았다.
건방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너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필요없어서 보내는 것이라 했다.
이럴 때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보다 많은 돈을 받는거라 했다.
그는 그렇게 홀로 남아 남은 싸움을 끝마쳤다.
이후로 몇 번을 더 함께 일을 했다.
여전히 입을 찢어버리겠다고 하기도 하고 썩어문드러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사지에 들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쯤이면 그는 나를 위한 방패가 되어주리라는 것을.
그래서 한없이 신뢰한다.
그를 믿고 따르는 이유이다.
나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를 믿고 따르는 이유가 권력이나 돈이 아닌 믿음이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제 내가 처리할 수 있으니 먼저 가시라 했다.
빚을 갚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의 모습을 보고 이만큼 컸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다.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건방지다였지만.
일로 엮여진 관계는 깊게 가져가지마라 한다.
상처받기 쉽기 때문이다.
모두들 성인이고,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서로에게 쉼없이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믿고 함께 했는데 권력 앞에서 돌아서는 사람도 보았다.
거짓말로 동료들을 수년간 기만하는 사람도 보았다.
끊임없는 이간질로 자신에게 관심을 끌려는 사람도 보았고,
남의 공을 자신의 것인양 가로채는 사람도 보았다.
이 모든 인간 군상을 모여있는 직장이라는 곳에서 인간관계를 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도 가끔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싶을 때가 있다.
입을 찢어버리겠다고 했던 그는 여전히 화가 나면 내 입을 찢어버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함께 구덩이에 빠졌을 때 자신의 어깨를 딛고 나를 나가게 해 줄 사람이라는 것을.
어리석음을 좇아 상처를 입을지라도 그 어리석음의 대가로 얻는 사람이 달콤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