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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Oct 23. 2020

내리는 맛도 있다. 하차감이란 맛이다.

어머~ 이 차는 꼭 사야 해! #4편

우리가 경제학자로 알고 있는 애덤 스미스는 사실 <국부론>을 쓰기 전 <도덕 감정론>이라는 걸작을 저술했다. <도덕 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공감이라는 속성을 통해 도덕이라는 사회적 행위의 규준을 풀어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쉽게 풀어보면 인간은 ‘공감’이라는 본성을 타고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슬퍼하면 나도 슬퍼하고, 내가 화나면 다른 사람도 함께 화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공감에 기초하여 양심과 자비라는 도덕률을 이끌어 내었지만, 나는 하차감이라는 근본 없는 단어의 속성을 풀어낼 것이다.




‘하차감’이라는 근본 없이 탄생한 이 말은 자동차에서 내릴 때 느끼는 우월하고 뿌듯한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고급 차에서 내릴 때 타인들이 나를 바라보는 부러움 가득한 그 시선을 느낄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사실 그 감정은 실제 타인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타인이 되었다면 그렇게 느낄 것이라는 '감정의 공유'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고급 차를 타는 이들을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감정을 가졌기에 타인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는 그 공감에서부터 하차감의 근본은 시작된다.


허세 가득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하차감’은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자동차를 구입하면 얻을 수 있는 크나큰 효용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하차감은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고급 차를 타고 주변의 선망 어린 시선을 느끼면서 우쭐해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차라는 것에는 다양한 의미가 부여될 수 있고, 부여된 의미에 따라 차급에 관계없이 하차감을 느낄 수도 있다.


부모님 댁에는 3대의 차가 있다. 첫 번째는 2000년에 구입한 싼타페이다.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선물해 준 20살을 넘긴 노령의 이 싼타페는 아버지의 보물이다. 터널에서 멈춰 선 아찔한 순간까지 있었지만 아버지는 버리지 않고 수리해서 타고 다니신다. 어머니의 선물인 싼타페는 아버지에겐 최고의 하차감을 느끼게 하는 차이다. 두 번째는 2009년에 구입한 라세티 프리미어이다. 아들이 사회생활 시작해 모은 돈으로 선물해 준 차라는 이유로 잘 타지도 않지만 항상 잘 관리되어 주차장에 모셔두는 차이다. 공식적인 행사가 있는 날이면 어머니는 이 차를 이용하신다. 아들이 선물해 준 차라는 의미만으로도 친구분의 벤츠 E클래스가 부럽지 않다고 하신다. 세 번째 차는 이동수단일 뿐이다. 싼타페와 라세티 프리미어를  팔자는 이야기에는 펄쩍 뛰시지만 가장 비싸고 좋은 세 번째 차는 툭하면 팔아치우겠다고 하신다. 부모님들이 느끼는 하차감은 단순히 차의 가격이 아닌 차의 의미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에게는 스파크 LPG 수동이 있다. 흔치 않은 수동에 스파크라는 경차, 게다가 소위 가스차라 불리는 LPG 차량이라 희소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따를 차가 없다. 함께 달리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날 때 이 차를 타고 가면 그야말로 ‘핵인싸’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동안 나에게는 이 차야 말로 하차감을 느끼는 차였다.


친구에겐 주행거리 400,000km을 돌파하기 직전인 싼타모가 있다. 세월이 무색할 만큼 잘 관리된 그 차는 그에겐 추억의 보관소이자 자랑거리이다. 홀로 맨땅에서 시작한 사업이 성공하기까지 함께한 동료 같은 존재이다. 최신의 BMW 5 시리즈와 만능 일꾼 포터도 있지만 그는 종종 싼타모를 타고 함께 달리기를 한다. 그는 심경이 복잡할 때면 싼타모 안에 틀어박혀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그는 이 차에서 내릴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에겐 그것이 하차감이었다.


셀프 세차를 하러 자주 들리는 세차장에 파란색 SM3 초기형과 종종 마주치곤 한다. 차주는 엔진룸까지 꼼꼼하게 닦는데 볼 때마다 그 차의 관리상태에 감탄한다. 멀찍이 떨어져 흘끔거리는 시선을 차주도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세차장에서는 좋은 차보다 관리가 잘 된 차가 주인공이 된다. 오래되었지만 차주의 세심한 관리 (병적인 관리)로 유지되는 차들은 디테일링에 빠진 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차를 운용하는 차주들은 세차장에서 한없는 하차감을 느낄 것이다.


BMW M(BMW의 고성능 차량 디비전)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선배가 있다. 그 선배는 BMW에서 출시되는 M Package가 적용된 모델(M에 사용되는 부품을 일부 적용한 일반 모델)을 볼 때마다 폄하한다. M을 살 능력이 되지 않으니 껍데기만 사는 허세스러운 행태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얼마 전 BMW 3 시리즈를 산 친구가 있다. 그 차 역시 M Package가 적용되어 있지만 그 차는 그의 보물이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닦아주고 씻어줄 뿐만 아니라 차에 좋다는 온갖 케미컬을 아낌없이 사용한다.


누군가는 M3를 타도 하차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320i만으로도 충분한 하차감을 느낀다.

하차감은 개인적인 것이다.

그 하차감의 이유는 자신만이 알고 있고 자신이 결정한다. 자신이 가지는 감정을 타인에게 투영하기 때문이다.


하차감은 가격 순이 아니다. ©pixabay




사람은 누구나 공감한다. 누구나 타인의 감정에 자신을 대입시킨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타인이 똑같이 느껴주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오래된 고물차로 보일지라도 나의 차가 자랑스럽다면 타인도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한다. 영타이머(클래식이나 올드카로 분류하기 어려운 차령 30년 이내의 차를 일컫는 말)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차에서 내릴 수 있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고, 자신의 관리 잘 된 영타이머를 알아주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도 공감 때문이다.


대상이 끊임없이 바뀌는 대중교통과 달리 자동차는 이동의 시간 동안 항상 나와 함께한다. 단순히 시간만 함께하는 것이 아닌 조작하고 반응하며 대화하듯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축적되는 감정의 의미가 다르다. 오랜 시간 함께 하기에 애착이 형성된다.


하차감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겐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것을 확인시켜주는 매개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지난 세월 흔적이 쌓인 추억의 퇴적물이기도 하다. 어렵게 돈을 모아서 산 첫 차는 비싸서가 아니라 첫 차이기 때문에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이루어 스스로 만들어 낸 실체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차감은 그런 것이다. 내면을 향하는 자존감이 하차감이다. 긍정적인 하차감은 차를 소유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의식을 환기시켜 준다.


그래서 감히 하차감을 자동차를 구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용으로 꼽아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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