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에서 만년필을 샀다고 했다.
카톡으로 연달아 올라오는 사진에는 빨간색의 볼폼없이 생긴, 라미(Lamy)의 사파리를 닮은 3000원짜리 만년필이 있었다. 이미 만년필은 충분히 경험해보고, 소유하고 있는지라 큰 관심이 없이 넘겼다.
우연히 어제 본 그 만년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만년필은 색깔은 달랐지만 같은 만년필이었고, 사진을 올린 이의 극찬이 함께했다.
이쯤 되면 도무지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물건에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만족하지 않아서가 아닌 궁금증 때문이라는 나의 지론이 다시금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똑같은 것을 소유하기 싫어하는 나로서는 만년필을 하나 더 구입해야 할 적당한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내 것이 아니지만 내가 써볼 수 있는... 어쨌거나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를 설득할 수 있는 그럴듯한 변명이 생각났고, 마침 다이소에 놀러 간 후배에게 부탁해 2000원짜리 만년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000원짜리와 3000원짜리 만년필은 동일하고, 컨버터가 들어있는지, 카트리지만 들어있는지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소유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만족의 불꽃으로 바뀌어 타올랐다. 왜 그렇게 극찬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2000원이면 제대로 된 볼펜 하나 값인데, 만년필이 이 가격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순수하게 필기구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부족함이 없었다. 만족의 불꽃은 사그라들어가는 소유의 흥분을 흔들어 깨웠다.
이렇게 좋은 것을 나 혼자만 알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삼각대를 세우고 제품 사진을 정성스레 찍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도 만족의 불꽃을 글로 남겨 타인의 소유욕에 옮겨 붙기 기대했다. 단톡방에는 나의 간증까지 이어지면서 다이소 만년필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몽펠파(몽블랑, 펠리컨, 파커 - 만년필계의 3대 브랜드) 소유주부터 그라폰(그라폰 파버카스텔 - 파버카스텔 사의 고급 브랜드로 만듦새만 따진다면 가히 최고라 생각한다.), 워터맨, 오로라 소유주들까지 나름 만년필을 사용해보았다고 자부하는 이들 모두 다이소 만년필을 써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이제 아무도 다이소 만년필을 언급하지 않는다. 소유의 흥분 앞에서 냉철한 평가는 사라졌고, 구매의 광풍에 다들 선별안이 가리어진 채 무작정 집어 들었던 탓이었다.
문득 연필꽂이에 아무도 찾아주지 않은 채 꽂혀있는 다이소 만년필을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필사(시나 소설 등의 글을 베껴 쓰는 것)를 하기 위해 꺼내 들었던 몽블랑 146을 잠시 내려두고 다이소 만년필로 써 내려갔다. 필감은 거칠었고, 그립감은 무엇인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흐름이 많음에도 조절이 되지 않고 그저 줄줄 흘러내리기만 하는 닙이 가장 거슬렸다. 만년필은 농담이 조절이 되어야 하고, 필압에 따른 획의 변화가 느껴져야 하는데 그러한 부분은 깡그리 무시된 채 그저 흘러나오는 잉크로 필기라는 기능만 가능할 뿐이었다. 소유했을 때의 흥분은 차갑게 가라앉아버렸고, 만족의 불꽃은 새하얀 재가 되어 날이 선 선별안만 번뜩일 뿐이었다. 만년필로써의 매력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필기구로써만 충실할 뿐이었다. 그것도 어느 정도 두께가 있어 뒷면으로 배어 나오지 않는 그런 종이 위에서만.
돌이켜보니 그간 만년필에 관련되어서는 이제 알만큼 알았다는 허세와 만족감으로 인해 공허함이 있었던 것 같았다. 나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있어야 했고, 그 공허함을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 휩쓸려버렸던 것 같았다. 다이소 만년필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공허함을 '소유'라는 천박한 행위로 메꾸려 했던 나의 잘못이 있을 뿐.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눈 앞의 다이소 만년필이 한없이 처량하게 보인다.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할 수 있고, 가치에 걸맞은 가격으로 세상에 나왔을 뿐인데, 다만 허영에 눈이 가려진 사람의 손에 들어와 냉대와 모욕을 당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안쓰럽다가도 막상 쓰면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 다이소 만년필과의 불편한 동거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