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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Dec 15. 2020

타조는 그렇게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다.

타조 증후군(Ostrich Syndrome).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타조가 위험에 처하면 머리를 땅속으로 박은 채 위험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을 빗대어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위험에 대응하기보다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위험이 없어졌다 생각하다 위험에 빠지는 경우를 일컫는 일을 말한다.


이는 타조가 위험에 처하면 땅 속으로 머리를 파묻는 행동을 보고 만들어 낸 용어라는데... 사실 타조가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는 이유는 더운 날씨에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수분이 있는 땅바닥에 목을 길게 내려뜨리고 쉬기 위함이라 한다. 게다가 땅 속에 머리를 박게 될 경우 멀리 있는 작은 소리도 훨씬 잘 들리게 된다. 소리는 기체보다 고체에서 훨씬 빠르게 전달되고 타조의 천적들이 내는 움직임에서 나오는 소리가 대부분 발소리임을 생각해 보면 아둔함이 아닌 영리하고 합리적인 습성이라 볼 수 있다. (인간들도 발자국 소리를 잘 듣기 위해 땅바닥에 귀를 대지 않았나?) 어쨌거나 이런 타조의 습성을 오해한 인간들에 의해 타조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타조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타조의 깊은 뜻(?)을 몰라본 채 위험의 본질을 무시하고 현실 부정을 통해 문제를 피하려고 하는 타조가 어리석다 생각한 인간들도 똑같이 행동한다. 다만 인간은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위험을 기민하게 감지하기 위해서도 아니라 어리석은 것으로 오해했던 타조처럼 눈 앞의 위험을 보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감는다.



"며칠 바람이나 씌고 오려고요."

"일은 해결했고?"

"아뇨... 잠시 여행 다녀오면 나아지겠죠."


대화가 여기까지 오면 나는 백이면 백, 일을 해결한 후 여행을 다녀오라 한다.

압박하고 있는 일이 있는 상태에서의 여행은 여행이 아닌 도피에 불과하다. 가끔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타조처럼 눈을 감으면 그 위험이 없어질 거라 생각한다.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일도 아니고 이미 승부가 기울어졌다는 핑계로 눈 앞의 일을 회피하고자 한다. 버티고 서 있기 힘들다 보니 잠시 동안이라도 피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여행이 아닌 도피 중 운 좋게 나를 짓누르던 일을 잊고 즐길 수 있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그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이겨내야 할 일이라면 하루빨리 끝을 내는 것이 좋다.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일을 버티는 사이에 다른 일을 시작할 기회를 상실한다.


이런 일을 주식에 자주 비유한다.

내가 영끌을 해서 매수한 주식이 계속 떨어져 손실을 입고 있다면, 주식 앱을 지우고 없는 셈 치고 모른 척할 것이 아니라 두 눈을 부릅뜨고 어떻게 해야 할지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손절을 하고 다른 주식을 매수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 저가 매수의 기회라 생각하고 추가 매수(물타기)를 할 것인지, 그것이 아니면 확신이 있기 때문에 더 기다려볼 것인지. 그리고 방향을 정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내 눈 앞에 닥친 위험을 주식 앱을 지우고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실제로 떨어진 주식이 보기 싫어 앱도 지우고 몇 달간 보지 않았던 선배가 있었다. 그 주식은 선배가 안 보는 사이에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고 일주일 정도의 광풍이 휩쓸고 간 후 다시 떨어졌다. 나는 당연히 그즈음에 선배가 매도했을 거라 생각했고, 커피를 마시면서 주식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래도 손해는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 했는데... 아뿔싸! 선배는 그때까지 정말로 보지 않고 있었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선배는 그 날이후 부랴부랴 앱을 다시 깔고 눈이 빠져라 지켜보았지만 다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매일 해결해야 할 일, 결정해야 할 일이 쌓여간다. 그리고 매번 우리는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 가끔씩 책임을 지기 버겁거나, 내 뜻과는 달리 나에게 쏟아지는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어려움 앞에서 주눅 들기도 하고 무거움에 압도당하기도 한다. 더 이상 버티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압박감에서 도망치고 싶어 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잔인하게도 도망친다고 무릎 꿇고 굴복한다고 어려움이 사라지거나 나를 가엾이 여기지 않는다. 어려움을 피하는 방법은 맞서서 이기거나 내 발로 열심히 뛰어 어려움이 쫓아오지 못할 만큼 달아나는 것뿐이다. 달아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려움을 등지고 뛰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라도 두 눈을 부릅뜨고 어려움을 직시해야 한다.


어려움이 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기 위해 머리를 땅 속에 넣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보지 않기 위해 땅 속에 머리를 넣는 것은 우리도, 타조도 하지 않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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