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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Dec 20. 2020

홀로서기의 우연함

재능이 분배되는 방식과 사회 환경의 우연성은 원래 부당해서 제도를 손본다 해도 문제는 늘 남기 마련이며, 그러한 부당함은 인간의 조정에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는데 우리는 그 주장을 거부해야 한다.

더러 부당함을 간과하는 구실로도 이용되는 그 주장은 부당함을 묵인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와 똑같이 취급한다. 자연의 분배 방식은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타고나는 요소일 뿐이다. 공정이나 불공정은 제도가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롤스, 정의론>


보호 종료 아동

아동복지법에서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또는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등 그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아니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이라 정의하는 그들을 일컫는 말이다. '보호 종료 아동'이라는 이 낯선 단어를 접한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세상에 그들이 있으나, 그들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실효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국가와 기관의 보호막조차 걷어지는 만 18세가 되면 이들은 정착지원금 500만 원을 가지고 세상에 홀로 서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성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편견이라는 짐만 해도 버거운 이들에게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성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세상으로 밀려 나오는 그들에게 가용한 자원이 500만 원과 한 박스 남짓한 소지품이 전부이다.


이들에게 그 누구도 성인이 되었으니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들에게 홀로서기는 진정 '홀로' 일어서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홀로서기

몇 년 전 30살을 넘긴 후배가 자신의 독립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었다. 석사 과정을 끝내고 지방의 정출연에 취업을 했고, 자취를 위해 근처의 20평대 아파트를 구입했다. 명목상 어머니에게 빌렸다는 프리미엄 독일 브랜드의 SUV로 출퇴근을 한다. 그는 이것을 홀로서기라 명명했지만 나에게는 부모님과의 '주거의 분리'라는 의미,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건 이 후배는 자신이 결단력 있고 비교적 빠른 시기에 홀로서기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고, 그 노력에 걸맞은 능력으로 홀로서기할 수 있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이러한 주제(진정한 홀로서기는 무엇인가?)는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고, 부모의 능력도 나의 능력이라는 그의 믿음은 굳건했다. 부모의 도움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홀로서기'에 들어오는 순간 그는 영원히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누군가를 향해 분노의 돌을 던지며 비난하자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요, 섣부르게 동정의 손길을 내밀자는 것도 아니다. 롤스가 <정의론>에서도 밝혔듯이 재능이 분배되는 방식과 사회환경의 우연성은 항상 부당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역사, 국적, 부모 등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우연적 요소로 인한 영향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우연적 요소로 인한 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부정의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우연적 요소

롤스는 정의론을 통해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할 것을 제안한다. 이 제안을 사회 구성원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가정환경, 경제적 우위 등이 모두 우연적 요소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러한 우연적 요소를 '우연하게' 받지 못하는 이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자신의 우연적 요소를 사용한다는 것이 단순하게 세금을 더 내고, 더 많은 기부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노력으로 사회에 기여하거나, 공동체 내의 효용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것도 포함된다.


중요한 것은 '우연적 요소'라는 것을 공동체 전체가 인정하고 '우연적 요소'를 많이 가졌다고 해서 부러워하거나 선망하지 않고, '우연적 요소'를 가지지 못했다고 하여 편견과 차별을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연적 요소'가 인간의 본질이 아니며, 우연적 요소로 인해 얻은 성과 역시 개인적인 노력의 대가가 아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노력한 것에 대한 대가로 이해하길 바란다.


공동체가 '우연적 요소'를 받아들일수록 우리는 조금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해야 할 이야기는 이미 끝이 났다.

아래 글은 본편이 끝난 후의 광고라 생각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아래 청와대 청원은 이미 종료되었다.

청와대 청원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므로 마음 편히 읽어주길 바란다.



  

만 18세가 되어 보호 종료가 되어 사회에 나오는 이들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핸드폰 개통이 필수적임에도 홀로 핸드폰을 개통하기 위한 나이는 만 19세라는 문제를 지적한 청원이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홀로 세상을 살라며 사회 속으로 밀어 넣었으나, 사회에서는 여전히 핸드폰을 홀로 개통하지 못하는 어린이 취급을 받는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명의도용이라는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누가 그들에게 불법을 저질렀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이들에게 얼마나 사회적 관심이 없었는가는 참여인원 200명이 말해준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핸드폰 개통에 관련된 입안이나 정책에 관여하는 분이 계신다면 이 상황을 알려주고 싶어 글을 남긴다. 부디 이들이 원치 않는 불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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