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AI를 위해 LLM을 만들어야만 하는가? 만들 수는 있는가?
농사가 목적인가? 트랙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인가?
컴퓨터 시대의 핵심 플랫폼은 운영체제(OS)였다. OS는 단순히 컴퓨터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생태계를 연결하는 산업적 플랫폼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상업용 운영체제는 모두 미국 기업에서 탄생했다. IBM의 DOS부터 시작해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 애플의 macOS와 iOS, 구글의 Android까지 모두 미국발 OS이다.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다른 국가에서도 독자적인 OS 개발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제한적인 성공에 그쳤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는 OS가 기술적 우위를 넘어, 글로벌 생태계 구축과 자본, 인재, 전략적 연합이 모두 결합되어야 하는 고도의 복합적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OS는 긴 시간의 투자와 막대한 자본, 뛰어난 기술력은 물론, 이를 뒷받침할 거대한 글로벌 생태계가 요구된다. 한국의 티맥스OS나 중국의 Kylin OS 사례는, 아무리 정부가 강력히 밀어붙여도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금의 AI 시대에 OS의 역할을 수행하는 플랫폼은 무엇인가?
AI 시대에는 LLM(Large Language Model)이 OS의 역할을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 전통적 OS가 하드웨어 자원을 추상화하고 관리했다면, LLM 기반 플랫폼은 언어적, 인지적 자원을 추상화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사용자가 더 이상 OS를 직접 다루지 않고 AI와 대화하며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든다. OpenAI의 ChatGPT, 구글의 Gemini, Anthropic의 Claude 등이 대표적 예시이다.
이러한 LLM 플랫폼이 새로운 OS로 자리잡는다면 한국이 글로벌 AI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자적인 LLM을 만들어야 할까? 아니 만들 수는 있는 것일까? 만들어도 성능이 떨어져 그것을 이용해야만 하는 국내 AI 서비스들의 품질은 떨어질텐데 그것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인가? 사실 LLM을 SOTA 수준으로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도전이다. 이미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 GPU 인프라,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보유하며 거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범용적 초거대 언어모델을 만들어 경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은 데이터량과 연산 자원 확보, 글로벌급 AI 연구 인재 부족 등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LLM 개발을 농사짓는 일에 비유하며 국가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비유는 정확하지 않다. 농사라는 과정은 밭, 물, 비료, 농기구 등 다양한 요소의 총합이기에 LLM을 농사 전체로 비유하는 것은 모호하고 비효율적이다. LLM은 농사의 전체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농기구'에 더 가까운 존재이다. 좋은 농기구는 농사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필수 요소이지만 이것만으로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진정한 농사는 다양한 작물을 심고 키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있다. AI 생태계 역시 다양한 AI 서비스와 Agent들이 생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가 집중적으로 투자할 분야는 LLM 자체 개발보다 이를 활용한 AI 에이전트 서비스,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개발, 데이터 인프라 구축, 특화된 오픈소스 기반 Vertical small LLM(sLLM) 및 Small Language Model(SLM) 등이다. 차세대 로봇, 자율주행 자동차, MR 디바이스와 같은 제조산업 제품의 지능화를 통해 한국 제조업의 AI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즉, 한국이 AI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LLM이라는 '농기구'를 스스로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 훌륭히 만들어진 글로벌 농기구(LLM)를 활용해 '농사(생태계)'를 잘 짓는 전략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 과거 한국의 신토불이 웹 서비스와 모바일 앱들이 글로벌 IT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처럼 AI 시대에서도 중요한 것은 초거대 모델 자체보다 이를 활용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AI 서비스와 에이전트들의 성장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AI 서비스와 Agent들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집중적으로 펼쳐야 한다. LLM 개발 경쟁에서 벗어나 이미 증명된 글로벌 모델을 기반으로 빠르게 시장에 적용 가능한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AI 시대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전략이다.
"소버린 AI는 '농사'다. 하지만 트랙터를 만드는 게 핵심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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