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끈

오빠의 결혼식

by 진심과 열심

지난 주말 오빠가 결혼했다. 오전 11시 예식이었고 서둘러 가야 하니 새벽 4시 반부터 아이들 산책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머리며 얼굴을 꾸몄고 7시 반쯤 강남에 있는 예식장에 도착했다. 엄마는 곧장 사돈 어르신과 함께 메이크업을 받으러 가셨고, 본격적인 리허설은 9시 이후가 되어서야 할 수 있기에 아빠와 나는 그 시간까지 대기해야 했다. 예식장 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았는데도 시간이 남아 가져갔던 아이패드로 전자책을 읽었다. 예식 한 시간 전인 10시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뭔가 시작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제야 하객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사람들

갑자기 손님들이 밀려들어 와서 이리저리 분주해졌다. 내가 아는 얼굴들이 보이면 다가가 인사했고 식장을 안내해드렸다. 중간중간 엄마나 아빠가 불러 다른 분께 나를 소개하시면 누구인지 몰라도 밝게 웃으며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그분들은 “어머 네가 이렇게 컸니, 아기 때 모습만 봤는데”라고 말씀하시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엄마와 아빠에게 오랫동안 이야기로만 들었던 분들을 실제로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엄마의 친한 친구들도 일곱 살 이후로 처음 뵈었는데, 모두가 따뜻한 눈길로 나를 바라봐주셨다. 엄마와 친구분들의 우정이 지금처럼 영원하기를 바라며 사진을 여러 장 찍어드렸다.

신기했던 게 뵌 지 20~30년은 지났음에도 내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얼굴들이 꽤 많았다. 그간의 세월 동안 이분들도 나도 같은 시간을 거쳐왔던 거다. 많은 사람들로 웅성거리는 결혼식장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 어떻게든 신랑·신부 측 가족 누군가와 언젠가 연을 맺은 사람들일 텐데, 그 보이지 않는 끈들이 연결돼 한날 한 자리에 모인 거라고 생각하니 뭉클해졌다. 어쩌면 결혼식은 엄마의 엄마, 아빠의 아빠 때부터의 역사가 모여 이어진 연대의 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가족들을 다시 보게 됐다

가족들과 매일 부대끼며 살다 보니 서로의 단점을 잘 알고 허물없는 모습을 본 터라 가족들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가족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되었다.

결혼하는 당사자인 오빠는 내게도 다정한 사람이다. 원래도 사람을 잘 챙기며 주변을 이끌어가는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빠는 생각보다 더 씩씩했고, 진중한 사람이었다. 결혼식 전 우왕좌왕하며 손님들을 맞을 때 오빠가 제일 좋아하고 많이 배우고 있다던 회사 부장님을 내게 소개해줬고, 나도 모르게 “저희 오빠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부장님께서는 오빠가 워낙 잘한다고 칭찬하셨다. 오빠의 회사분들, 친구들, 군대 동기까지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가장 다른 모습을 보게 된 건 아빠였다. 아빠와 평소에 진지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아빠와 나는 늘 서로의 실수를 저격하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기만 하는데 신랑 아버지로 긴장한 채 서 있는 아빠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빠가 많은 하객분들 앞에서 정중히 인사하시며 또박또박 축사를 말씀하시는데 내가 그동안 아빠를 많이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기간 취미로 연습해오신 색소폰을 축주로 연주하셨는데 무척 감미로웠다. 연주하다가 오빠에게 잘 커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하셨는데, 평소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오빠에 대한 아빠의 사랑이 무척 크다는 게 느껴졌다.

이날 엄마는 한복 대신 민트색 드레스를 입으셨다. 평소 잘 꾸미지 않으시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곱게 단장한 엄마가 무척 아름다웠다. 하객분들은 내게 장난으로 “어떡하니 큰일 났다. 네 엄마 다시 시집가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가족이 무척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우리 가족의 일원이라는 게 감사했다. 결혼식이 끝난 주말 내내 부모님께서는 전화기를 붙들고 참석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셨다. 이번 기회에 우리 가족에게 연결된 인연의 끈들을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되었다. 이 모든 사람의 역사가 겹쳐 지금 내가 존재하는 거라는 깨달음을 이번 결혼식에서 가장 크게 느꼈다.


내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나와 동갑인 언니가 생겼다. 내가 생일이 열한 달이 빠르지만 오빠의 아내가 되시니 내겐 ‘언니’다. 오빠만 있는 나는 예전부터 언니를 갖는 게 소원이었는데 비로소 가족 중에 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언니는 다섯 자매 중 셋째다. 오빠에게 이 얘기를 듣는데 소설 같다고 생각했다. ‘남매애’와는 또 다른 자매들의 우애가 보기 좋았다. 상견례 전 언니의 여동생들과 미리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나보다 더 사람들을 살뜰히 챙겼고 무척 다정했다. 아직 어색하지만 내게 여동생 둘도 생긴 느낌이다. 예식 날 저녁에 서로 휴대폰으로 수집한 결혼식 사진을 공유했다.

언니에 대해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시누이와 올케 사이는 우리나라 가족 관계 중에서도 가장 껄끄러운 관계가 아닐까 싶다. 엄마와 고모 사이를 익히 봐왔던지라 걱정도 됐다. 언니 입장에서는 내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니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조심히 조금씩 다가가고 싶다. 엄마 아빠가 누군가의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된다는 게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이미 그 역할을 충실히 잘하고 계시는 것 같다. 나도 잘해야지. 언니에게 좋은 가족이 되고 싶다.


여유로웠던 시간 찍은 결혼식장 안 예뻤던 공간. 이날 밝게 빛나던 촛불처럼 오빠와 언니가 이룬 가정이 행복하고 따스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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