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어
며칠 전 아침 내게 벌어진 일이다. 출근길을 나서는데 평소보다 짐이 많았다. 매일 매는 백팩에 에코백을 하나 더 들었고 에코백 안에 회의 때 필요한 참고도서 네 권을 넣었다. 버스에서 원고를 보다가 졸았고 이런저런 짐을 챙기고 평소처럼 줄 끝에 합류해 천천히 내렸는데 뭔가 찜찜했다. 이런 식의 싸함이 늘 잘 맞는 편이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코백부터 백팩까지 뒤졌는데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 ‘에이 아닐 거야’ 싶었는데, 손목에 차고 있는 애플워치에 네트워크 연결이 안 되어 있었다. 버스에 휴대폰을 두고 내린 건 사실이었다!
가을 아침이 느껴지는 쾌청한 하늘 아래, 도심 한복판 속 갑자기 홀로 미아가 된 느낌이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라도 말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이러니하게도 휴대폰이 필요했다. 어렸을 적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와 비슷한 공포가 밀려 들어왔다. ‘내가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심호흡하고 최적의 방안을 떠올렸다.
우선 회사에 가서 노트북을 켜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버스회사 전화번호도 검색할 수 있고, PC 카카오톡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할 수도 있을 거다. 내가 탔던 버스는 종점에 도착해 잠시 정차하고 되돌아오니 어쩌면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반깁스한 다리를 이끌고 회사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펼쳤고 내가 탄 버스회사를 검색했다. 네이버 지식인에 누군가 분실 문제로 해당 버스회사 번호를 묻는 질문이 있었고 전화번호가 친절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순간 망설여졌다. ‘무엇으로 전화를 걸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휴대폰이 없으니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자산은 지금 내 자리에 있는 회사 전화기뿐이었다. 워낙 사무실 안이 조용해서 전화는 보통 사무실 한편에 있는 전화 부스에서 내 휴대폰으로 했기에, 회사 전화기를 사용하려고 하니 무척 낯설고 불편했다. 아무리 작게 얘기해도 누군가 내 통화 내용을 들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휴대폰을 되찾는 거니 그건 감수해야 하는 문제였다.
버스회사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직원분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탑승 시간과 하차 시간, 앉았던 좌석을 이야기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옆에 아무도 앉지 않았기에 아직 휴대폰은 버스 안에 그대로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버스회사 직원분께서 “어떻게 연락드리면 되죠?”라고 물으시기에 잠시만요 하고 서랍 위 칸을 뒤적였다. 부끄럽지만 회사 전화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에 내 직통 번호를 외우고 있지 않다. 명함을 꺼내 직통 번호를 불러드렸다. 직원분께서는 혹시 전화가 오지 않으면 30분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후에야 휴대폰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고, 내 휴대폰에 전화해 달라고 가족들에게 PC 카톡으로 연락할 수 있었다. 오빠가 아이폰 위치 찾기를 해보라고 알려줬고, 검색해 아이 클라우드 홈페이지에 들어가자 로그인 화면이 나왔다. 애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는데, 아뿔싸 이런 정보도 휴대폰 메모 어플에 적어두었다. 어쩔 수 없이 추측해서 입력하니, 계속 나를 증명할 정보를 더 알려달라고 했다. ‘어렸을 적 인상 깊게 읽었던 동화책은?’ ‘처음으로 키웠던 동물 이름은?’과 같은 질문이 계속 나왔다. 전혀 기억도 나지 않기에 답답하기만 했다. 다행히 내게는 아이패드가 있었고 아이패드 설정에서 내 아이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밀번호는 이메일과 애플워치에 전송된 숫자로 몇 번 인증하니 새로 변경됐다. 이렇게 겨우 로그인하자 분실 신고와 함께 누군가 내 휴대폰을 발견했을 때 화면에 뜨는 메시지도 설정할 수 있었다. ‘이 휴대폰은 분실되었습니다. 발견하시면 OOO-OOOO-OOOO 번호로 연락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입력했다.
초조하게 30분쯤 기다렸을까 031로 시작된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버스회사 번호임을 직감했다. 전화를 받으니 직원분께서 “찾았다고 하네요”라고 경쾌하게 말씀하셨다. 안도의 한숨을 짙게 내뱉었다.
어디로 받으러 가면 되나요? 하고 직원분께 여쭤보았는데, 해당 버스를 조회하시더니 15분 뒤에 다시 내렸던 역에 갈 수 있냐고 물으셨다. 그럴 수 있다고 답하자 해당 차 번호를 알려주셨다. 바로 메모할 곳이 없으니(내겐 휴대폰이 없으니) 아까 꺼내놓은 명함에 볼펜으로 받아 적었다. 기사님께 말씀드려 놓았으니 가서 받으면 된다고 하셨다. “너무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회사에서 나와 역 정류장을 향해 부리나케 걸어갔다.
버스 탑승줄에서 기다리다가 버스에 올라가서 받으려고 했는데, 왜인지 이날따라 기이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다른 곳에 서서 오는 버스들을 초조하게 바라봤다. 곧 같은 버스 한 대가 왔는데 직원분께서 알려주신 차량 번호와 딱 한 자리가 달랐다. 명함에 쓴 번호를 연신 확인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10분쯤 기다렸을까. 멀리서 오는 버스의 끝자리가 알려주신 그 번호 같다는 직감이 들었고 버스 기사님 쪽을 보는데 기사님이 멀리서 휴대폰을 들고 팔을 크게 흔들고 계셨다. 나도 기사님께 손을 크게 흔들며 화답했다. 탑승자가 많으니 기사님은 차도가 있는 자신의 왼쪽으로 얼른 오라고 손짓하셨다. 2~3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기사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며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이 작은 물체를 손 안에 쥐니 쿵쾅이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됐다. 멈춰 있던 일상에 다시 재생 버튼이 눌러진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 휴대폰을 찾았다는 카톡 메시지를 보내며 회사로 복귀하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이 모든 게 1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이른 아침에 혼자 스펙터클한 첩보 영화 한 편을 찍은 느낌이었다.
휴대폰을 못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아찔한 건 단지 몇십만 원짜리 기계를 잃어버려서가 아니었다. 각종 사이트의 로그인 정보가 담겨 있고, 비밀번호 다섯 자리만 누르면 계좌를 열 수 있는 은행 어플이 깔려 있다.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는 수천 장의 사진도.
이런 보안상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휴대폰이 없으면 내 일상은 마비 상태가 된다. 가족들 외에는 기억하는 연락처가 없으니 일할 때도 난감해질 뿐 아니라, 심각한 길치인 나에게 휴대폰은 이동할 때 생존 도구처럼 중요하다. 운전도 휴대폰 내비게이션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하기에 못 하게 되는 건 물론이다.
휴대폰은 내가 지닌 유일한 호신 도구이기도 하다. 아이들 산책을 할 때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주머니에 휴대폰을 반드시 넣고, 택시를 탈 때도 어두운 길을 걸을 때도 휴대폰을 손에 꼭 쥔다.
그렇다고 휴대폰을 끼고 사는 타입은 아니다. 어쩌면 집에서 쉬고 있을 때는 모든 연락과 자극에서 방해받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휴대폰을 멀리 치우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나도 휴대폰이 없으면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점심시간에 아침에 휴대폰을 놓고 내린 에피소드를 얘기하니 팀 동료분께서 “현대사회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건 뇌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무척 공감했다. 뇌가 사라졌으니 공황 상태일 수밖에 없는 거구나 싶었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해봤다. 이 휴대폰이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도 있다고. 기분이 울적할 땐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주기로 어떤 주제의 영상을 찾아보는지, 무엇을 사고 싶은데 못 사고 있는지….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데이터로 잔뜩 저장하고 있지 않을까.
하루 동안 휴대폰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며 공포심도 느꼈기에 집에 와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라는 영화였다. 주인공은 나처럼 버스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리고, 범죄의 표적이 돼 모든 인간관계가 끊어지는 경험을 한다. 이 영화에서 범인으로 등장하는 임시완 배우가 누군가를 협박하며 내뱉는 대사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이것만 있으면 알 수 없는 게 하나도 없어요. 이것만 있으면 네가 뭘 샀는지 뭘 원하는지 뭘 가졌는지 뭘 처먹었는지 누구를 좋아하는지 누구를 싫어하는지.
이것만 있으면 누구든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는데 근데 뭐 말도 안 되는 생각하지 마?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