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생일 축하해
12월 12일 일어난 일을 다룬 〈서울의 봄〉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었다고 한다. 12월 12일은 내게도 역사적인 날이다. 꼬박 3년 전 이날 아가들이 태어났다. 중형견 기준으로 세 살이면 사람 나이로 서른 살이라고 하는데, 어느새 나와 아이들의 나이가 엇비슷해졌다니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또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구나, 우리 올해도 해냈구나 싶다. ‘해냈다’는 의미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 매일 아이들을 산책해준 엄마에 대한 고마움,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자라준 아이들에 대한 감사함, 무더운 여름과 쌀쌀한 겨울을 잘 이겨냈다는 안도감이 크다. 아이들 덕분에 올해에도 많이 웃고, 걷고, 계절도 촘촘히 느끼며 행복했다.
아이들의 신체적인 성장은 태어난 지 7개월 무렵 멈추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나날이 여러모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올해 아이들 각자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게 된 것 같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아이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이들이 나에게 사랑을 요청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서로가 내 손길을 기다린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쓰다듬어주다가 올해 내가 아이들의 털을 만져준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물리적인 시간만 계산해도 200시간이 족히 넘지 않을까 싶다. 이 시간은 절대 무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살게 해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매번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내게 끊임없이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너희들 고맙고 또 고마워.
우연히 소라를 만나 소라의 아이들까지 키우게 되었다. 내가 누리는 매일의 행복은 소라가 가져다준 선물이기도 하다. 아이들과는 달리 소라는 정확한 생일도, 나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늘 미안했다. 대신 아이들이 태어난 날을 소라의 생일로 삼기로 했다. 소라에게도 이날이 무척 특별할 테니까. 여섯 살 생일 축하해 소라야.
그때만 해도 너희가 나에게 이런 의미가 될 줄 몰랐어. 내 삶을 이렇게나 변화시킬 줄 몰랐어. 너희가 나를 살릴 줄 몰랐어. 우리 이렇게 딱 올해만큼만 잘 살아보자. 내년에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