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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Dec 02. 2023

너희에게 사랑을 배웠어

뒤돌아보니 네 배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부족할 때면,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다. 한숨이 짙게 쉬어지고 눈물이 차오르고 그렇게 주저앉고 싶을 때,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 역시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들이다. 내가 이렇게나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또 한번 뚜벅뚜벅 나아갈 수 있다.      


이번에 마감한 책에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존재가 누구든, 나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에게 오롯이 사랑받아본 사람이라면 ‘나는 나 자체로 완벽하구나, 그렇기에 자유롭구나’ 깨닫게 된다.”    

 

처음에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단번에 우리 네 마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건 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조금 비관적으로, 회의적으로 생각하면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나를 아껴주는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 주변에 있지만, 정말 냉정히.. 냉정히 생각하면….) 부모님 정도? 부모님도 내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다면 나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사랑해줄 수 있을까.

반면에 우리 네 마리에게 나란 사람은 내가 어떻게 생겼든, 무슨 일을 하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내가 어떻게 변해도 계속 조건 없는 사랑을 건네줄 거다. 설사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어도 내 영혼을 알아봐줄 것만 같다. 어떤 존재에게 한결같이 사랑받을 거라는 단단한 확신, 이 분명한 사실이 가져다주는 안도와 용기가 크다.


‘나는 사랑이 필요해요’라고 당당히 말하기      

올해 내게 일어난 기쁜 변화 중 하나는 ‘소라와의 관계’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를 봐온 아이들과는 달리, 소라는 주인이 따로 있었기에 내게 크게 애정을 갈구하지 않았다. 소라가 나를 싫어하진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만지는 걸 허용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 나를 대하는 소라의 태도가 부쩍 달라졌다. 나를 보면 불도저처럼 다가와, 자신을 만져달라고 찰싹 붙어 비비적댄다. 그렇게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이 충족될 때까지 계속 내게 안긴다. 소라는 몸무게가 22킬로그램이 나가는 중형견이고, 이제 일곱 살이 되며, 아이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런 소라가 ‘나를 사랑해주세요’라고 내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요청한다.

또 응석을 부리기도 한다. 실외 배변이 딱히 필요 없는 상황이어도, 내가 있으면 애처롭게 ‘하울링’을 한다. 그러면 나는 소라가 급한 줄 알고 허겁지겁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데, 막상 나오면 소라는 바쁜 모양새라고는 전혀 없이 느긋느긋 여유 있게 걸어간다. 기지개도 켜면서. 그러면 ‘또 당했다’ 싶으면서도, 소라가 나를 편히 여기고, 내가 자신의 요구를 다 들어줄 거라고 굳게 믿어주는 게 고맙다.      


받은 만큼 사랑을 돌려주기      

모든 건 상호적이지만, 사랑 역시 그렇다. 사랑받기를 원하는 만큼 사랑을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사랑을 당당히 요구하는 것만큼, 자신의 사랑을 깊이 우직하게 전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방송 중에 〈동물극장 단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달복이와 사월이라는 유기견이었던 반려견 두 마리를 키우는 남성분께서 하신 인터뷰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저 혼자 있었으면 아마 ‘될 대로 돼. 인생 뭐 있어’ 이러면서 지냈을지도 몰라요”라고 말씀하셨다. 아내분과 이혼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반려견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줬다고 한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뭉클했다. 나 역시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부지런하지 않았을 거고, 매 순간 포기하는 영역이 더 컸을 거 같다. 흔들릴 때마다, 두려울 때마다 아이들에게 듬뿍 건네받은 사랑으로 한 걸음씩 자신감 있게 나아갈 수 있었다.      

일하러 간 아저씨가 돌아올 때까지 한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사월이와 달복이. ⓒ KBS동물티비 유튜브


내 휴대폰 사진첩 속 거의 70퍼센트 이상은 아이들 사진인데, 최근에 자동으로 분류된 휴대폰 사진 앨범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 및 반려동물’이라는 항목에 놀랍게도 우리 네 마리가 각각 고유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털이 검은색인 기쁨이와 달리 소라와 희망, 사랑이는 사람들도 잘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이목구비가 비슷한데, 휴대폰이 모두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삶의 기본값은 ‘인내’라고 생각하던 내게, 매일 누리는 행복을 가르쳐준 너희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워.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부럽다. 소심한 나는 여전히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어렵지만, ‘아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하고 아이들에게서 하나씩 배우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네 배의 사랑과 용기를 받고 있어. 내가 주는 사랑은 한참 모자라지만, 너희에게 배운 사랑으로 조금씩 나아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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